3세 승계 2社2色… 삼성 속도내는데 현대차 “아직은 쉿!”

입력 2015-05-29 02:48

재계는 지난 2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오찬 행사를 3세 승계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삼성과 현대차그룹을 대표해 박 대통령의 좌우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후 3개월이 지났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승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광폭행보를 펼치며 승계 9부 능선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정 부회장의 승계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건재한 현대차그룹은 승계 얘기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승계를 위한 기초 작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정중동의 움직임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28일 “언젠가는 승계 문제가 공론화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회장님이 건재한 데다 후계자가 바뀔 상황도 아닌 만큼 차분하게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다. 정 회장이 그룹 핵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지분을 각각 6.96%, 5.17% 보유 중이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합병, 지분 매입 등 어떤 방식으로든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요하다.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나온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진행한 일련의 매각 및 합병 작업을 승계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정 회장과 함께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 502만2170주(13.39%)를 매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벗어나기 위한 매각이라는 설명이었는데, 정 부회장은 매각으로 7429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0월에는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 지분 30%(54만주)를 매각해 3000억원을 확보했다. 올 연말쯤 이노션이 상장되면 정 부회장은 남은 10% 지분도 매각해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이 지금까지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만 1조원이 넘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에도 주목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현대엠코를 합병한 이후 매출이 5조6892억원으로 전년 대비 배 이상 늘었고, 장외시장에서 주가가 급등해 1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정 부회장의 지분은 1조원에 육박한다는 평가다.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매각까지 이뤄지면 정 부회장은 2조원 이상의 승계자금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정 부회장의 경영활동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했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 회장의 면담에 동석했고, 3월에는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 4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그룹 내부적으로도 인사 판매 등 대부분의 현안을 정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