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면전에서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 대답을 강요당하는 아이 신세다. “아빠도 좋고, 엄마도 좋아요”라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모범답안은 불행히도 선택지에 없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미·중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우리나라 처지가 그렇다.
미국 측 논리대로 북한 핵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한반도에 꼭 필요한 전력이라면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이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미국이 안달을 떠니 의아스럽다. 우리 군이 구축하고 있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 체인 역시 유용한 대응전력이다. 사드와 KAMD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고도가 다를 뿐 개념은 비슷하다. 1차로 고고도에서 사드로 요격하고, 실패할 경우 저고도에서 KAMD로 격추하는 다층적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자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우리로서는 이중의 안전장치를 갖게 되는 것이어서 언뜻 남는 장사로 보인다. 남는 장사라면 우리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까닭이 없다. 지난주 존 케리 국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미국의 압력이 노골화되면서 “요청도 없었고, 협의도 없었고, 따라서 결정된 것도 없다”는 ‘쓰리 노’ 원칙은 효용성을 잃었다. 이미 막후에선 요청은 물론 협의까지 한 정황이 케리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사실상 우리 정부의 결정만 남은 셈이다.
사드 배치가 한·미 양국만의 문제라면 진작 결론이 났을 것이다. 미국의 입김이 거세질수록 사드 배치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는 중국의 대응 또한 격해지고 있다. 지난 26일 관영 환구시보에 실린 기고문은 중국의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요지는 이렇다. “최근 한·중 관계는 역대 최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이후에도 양국 관계가 현재와 같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사드 배치로 한국은 안전한 영토가 아닌 총알받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대학교수 기고 형식을 띠고 있지만 체제 속성상 중국 정부 입장으로 봐도 틀리지 않다.
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 악화를 의미한다. 사드 배치가 이 같은 불이익을 상쇄하고도 남을 실익이 있는지 세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드는 실전에서 실효성이 검증된 바 없다. 미 국방부 무기운용시험평가국장이 지난 3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사드는 실전운용에 요구되는 신뢰성이 아직 부족하다’고 적시돼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미사일 가운데 사거리 500㎞ 이하의 스커드미사일을 가장 위협적으로 꼽는다. 그런데 사드는 스커드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부적합하다고 한다. 미 의회연구소(CRS)는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남북의 거리가 너무 가깝고 북한 미사일이 저고도로 비행해올 가능성이 커 한반도에서 사드의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 군이 2023년까지 완료할 KAMD와 킬 체인 구축에 필요한 예산만 16조 5000억원이다. 여기에 1개 포대에 1조∼2조원이 소요되는 사드 비용까지 부담하기는 버겁다. 시설 및 탄약, 부속품 등 부대비용을 포함할 경우 7조∼8조원이 든다는 전문가도 있다. 북한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요격하려면 이런 포대가 3∼4개 필요하다고 한다.
안보는 어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포기해선 안 되는 절대가치다. 그러나 안보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돼 미국 무기장사의 ‘호갱’은 되지 말아야 한다. 사드 배치가 우리의 요구가 아닌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그 비용은 당연히 미국에서 부담하는 게 옳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정부는 이것을 사드 협상의 출구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여의춘추-이흥우] 사드 출구전략
입력 2015-05-29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