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지난 14일 전 계열사 대표가 사표를 제출하고 권오준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구성했다. 사표 제출은 실제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아니라 경영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적인 조치라는 포스코의 설명이 있었다. 당시 사표 제출을 둘러싼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권 회장도 사표를 낸 것 아니냐는 질문이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됐던 것이다. 포스코 측은 “그런 일은 없다”고 펄쩍 뛰었다. 실제로도 권 회장은 사표를 내지 않았다.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권 회장은 아직 2년 정도 임기가 남아 있고 회장 취임 이후 실적도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 자체가 포스코 회장 자리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철강 업계에서는 경쟁회사들조차 포스코를 보배 같은 기업이라고 평가한다. 포스코는 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몇 안 되는 한국 기업 중 하나로 통한다. 조강생산량 기준으로 포스코는 세계 5, 6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회사 1위를 5년 연속으로 차지했다. 기술력이나 생산성이 뛰어나다는 객관적인 지표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인 철강 과잉공급으로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포스코의 경쟁력은 우수하다.
반면 내부는 취약하다. 5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6위인 포스코는 오너가 없는 민간기업이다. 1분기 기준으로 보면 포스코의 1대 주주는 8.2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고, 2대 주주는 5.04%를 보유한 일본의 신일철주금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 포스코 주식의 54.21%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 회장은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회사원이 한국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라고들 한다. 장관보다 낫다는 포스코 회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 교체됐다. 박태준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은 대부분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포스코 안팎에서 “정치권력이 민간기업인 포스코를 전리품 취급한다”거나 “노골적인 외압이 심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 지도 오래됐다.
포스코가 매번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것이 ‘나쁜 정치권력’만의 문제일까. 역대 회장들이 물러난 이유를 보면 대부분 하도급업체 납품비리 수사나 금품로비 수사설, 세무조사 등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사퇴한 게 대부분이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자면 그 정도 압박도 견디지 못할 만큼 포스코 내부 구조가 취약하다고 해석될 여지가 크다. 두 달째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포스코 수사에 대해서도 온갖 해석이 구구했다. 납품비리 때문에 저렇게 대대적인 수사를 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6명 이상의 포스코 전·현직 임원들이 납품비리 등 혐의로 구속됐고, 더 많은 전·현직 임원이 비슷한 운명에 처해질 듯하다. 수사 의도에 대한 온갖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수십 년간 적발됐던 비리들이 여전히 적발되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은 포스코 내부의 일들을 알기 힘들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 벌어진다는 건 그만큼 문제가 크다는 의미일 수 있다. 오너가 없고 사업은 독점적 성격이 짙으니, 혹시 그들만의 잔치가 지속돼왔던 것은 아닐까. 포스코는 훌륭한 기업이지만, 포스코 직원들에게는 더 훌륭한 기업이라는 비판도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포스코를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세력도 문제지만, 외풍을 탓하기 이전에 포스코 내부의 구조도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권 회장이 사즉생의 각오로 만들었다는 비상경영쇄신위의 활동을 기대한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
[세상만사-남도영] 포스코의 두 얼굴
입력 2015-05-29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