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압도적인 체격과 울퉁불퉁한 근육의 ‘에어리어 보이’들은 지나가는 차량 보닛을 각목으로 두드리며 거칠게 불러 세웠다. 창문을 내리니 매섭게 노려보며 된 영어 발음으로 당장 여권을 달라 한다. 함부로 반항할 수도 없는 게 폭력이 곧 권력인 곳에서 조금만 수가 어긋나도 트집을 잡아 더 큰 요구를 해댈 것이 빤해 보였다. 외부인 제압용인지 어깨에는 장총이 걸려 있었고, 누구 하나 다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범죄 카르텔의 냄새가 짙게 퍼져 있었다.
베냉-나이지리아 국경은 흡사 난민촌처럼 고단한 복작거림과 경직된 긴장이 한데 섞여 곧 터질 것 같은 부푼 가스처럼 팽창해 있었다. 국경 검문소에서는 규정에 없는 통행료를 두 번에 걸쳐 받아갔지만 이런 것에 토를 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국경을 빠져 나오는 동시에 지옥의 문이 열렸다. 5∼10m 간격으로 줄을 서 차량 통제하며 통행세 명목을 요구하는 것이다. 에어리어 보이들의 행위는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상황과 다름 아니었다. 수㎞ 거리 내에 수십명의 친구들이 간이 검문소를 설치해 통행세를 받고 있었다. 자기 구역이라서 당연히 통행세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것이다.
비까지 와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붉게 퍼지며 질퍽거리는 가뜩이나 심통 맞은 길이었다. 각목에 몇 개의 못을 거칠게 박으니 흡사 도깨비 방망이와 같았다. 차에 흠집이 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검문관도, 경찰도, 심지어 경비원도 아닌데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여권을 내줄 때마다 혹 뺏기지 않을까, 가방을 뒤져 고가의 장비를 강탈하지 않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나쳐야 했다.
무사통과를 위해 2∼5달러의 뇌물을 몇 번이나 줬는지 모르겠다. 어림잡아도 스무 번이다. 나는 다니엘과 같은 강직한 마음이 없었던 걸까? 왜 뇌물을 받느냐 큰소리 한 번 치지 않고, 불의에 침묵해야 살 수 있는 길이었다. 간신히 국경을 빠져 나왔을 때는 깊은 호흡을 몰아쉬며 나직하게 주의 이름을 불렀다. 긴장이 풀렸던 걸까, 무서움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찬송이 흘러 나왔다.
어딘들 위험 없는 지역이 없겠냐만 나이지리아 선교는 정말 목숨 걸고 해야 한다. 기독교 탄압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방문 전 구글을 검색해 보니 수십명씩 사망한 사건만 해도 굵직한 뉴스로 도배되어 있었다. 또한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인 피랍 사건까지 뉴스에 떴다. 나는 주일 예배 이외에 선교지 탐방을 아예 포기했다. 대신 이 나라의 혼잡함을 다스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역사를 간구했다. 동시에 입국부터 출국하기까지 처음으로 외출 한 번 하지 않은 나라로 기록되었다. 그만큼 최악의 치안 부재국가였다.
2012년 10월, 나이지리아를 빠져 나가던 날 공항 X선 검색대를 앞에 두고 짐을 올려놓고 몸수색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짐을 찾으려는데 카메라가 사라졌다. 분명 바구니에 넣어 검색대 안으로 넣었었다. 직원들은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고, 나만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었다. 인상들이 험악해 항의는 못하겠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홀로 수색했다. 마침내 직원의 발아래에서 내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몰랐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렇게 나이지리아는 빠져 나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열흘도 채 되지 않게 머물다 간 나도 이럴진대 이곳에서 선교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들, 특히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중부 지역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적잖이 걱정된 마음에 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만 그렇게 기도했다. 나이지리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두려움 없이 살 만한 질서가 임하기를.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7) 이곳에 하나님의 질서가 임하길-외출 한번 하지 않은 나라, 나이지리아에서
입력 2015-05-30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