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분향소에서

입력 2015-05-29 00:20

햇빛도 찬란하고 하늘도 찬란한 어느 날이었다. 아름다운 날씨 탓인지 마음이 들떠서 물 맑은 호숫가나 푸른 숲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오래오래 걷고 싶었다. 친구와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을 다 하기 위해 친구가 사는 동네에 있는 경기도 미술관에 놀러가기로 했다. 한두 시간 산책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을 작정이었다.

미술관 주차장으로 들어서자마자 흰색 가건물이 보였다. 세월호 희생자합동분향소라고 했다. 친구와 나는 망설였다. 들렀다 갈 것인가, 그냥 지나칠 것인가. 호숫가를 향해 몇 걸음 걷다가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분향소로 향했다. 잠시 들렀다가 마음 편하게 산책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분향소 안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서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나오는 길에 나는 전시되어 있는 그 사진들을 보고 말았다. 작년 내내 어떻게 해서든지 보지 않으려고 애썼던 사진들, 그래서 끝내 보지 못했던 그들을 무방비 상태로 만났다. 단원고 아이들이 기울어져 가는 배 안에서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 휴대전화로 찍었다는 동영상과 사진들. 구명조끼를 입고 줄 맞춰 앉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해경이 곧 온답니다, 나 살고 싶습니다, 진짜로, 리얼리, 하나님,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분향소 밖으로 나와 여전히 찬란한 오월의 햇빛 속을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내내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사람들이 그 속에 갇힌 채 죽어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도 한다. 그건 진실일까.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날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던 우리에게, 정말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릴 권리라는 게 허락되었던 걸까.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