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중동 시장 시들… 반짝 뜨는 亞… 건설업계 “어쩔꼬”

입력 2015-05-29 02:54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자 국내 건설업계가 딜레마에 빠졌다. 고유가 시대에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먹거리’를 제공했던 중동의 발주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수주 텃밭이던 중동시장을 지키자니 건설사들 입장에선 추가적인 수익성 악화가 걱정이다. 그렇다고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아시아·중남미 지역에서 새로 입지를 강화하자니 그간 쌓아둔 인적 인프라가 부실한 실정이다.

◇‘애물단지’된 중동시장=1970년대에 이은 제2특수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올해 중동 건설수주 실적은 초라하다. 해외건설협회가 지난 25일까지 집계한 결과 2015년 중동의 수주 물량은 67억4197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246억3672만 달러에 비해 72.6% 감소했다. 계약 건수도 23건으로 지난해 52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해외건설 총 수주액은 231억3426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 311억1993만 달러 대비 25.7% 감소했다. 통상 해외 전체 수주액 비중의 50∼60%를 차지하던 중동실적이 29%로 뚝 떨어진 영향이다.

해외건설 진출 50주년을 맞는 올해 중동붐 재현을 위해 대통령까지 순방길에 올랐다. 정부는 전방위로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중동 산유국들이 발주량을 줄이는 등 몸을 사리는 상황에선 역부족이었다. 이에 올해 해외건설 수주액이 지난해 660억 달러는커녕 600억 달러에도 못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해에는 연초부터 이라크·알제리 등에서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줄줄이 쏟아졌다. 1년이 지난 현재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영국·네덜란드의 합작 석유회사인 로열더치셸이 카타르 국영석유공사와 공동 발주했던 알카라나 석유화학단지 프로젝트를 지난 1월 중단했다. 4년 전 시작된 이 사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카타르에 조성하는 프로젝트로 전 세계 건설업계의 관심을 끌었지만 낮은 수익성 때문에 결국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 정유소 개발 프로젝트도 발주가 잠정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유력했던 62억 달러 규모 쿠웨이트 알주르 신규 정유공장 수주도 엎어질 위기에 놓였다. 쿠웨이트 국영정유회사가 발주한 사업으로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을 순방할 무렵 한국 건설사가 포함된 컨소시엄들이 대거 최저가 입찰사로 선정되면서 수주가 임박한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상급기관인 쿠웨이트 석유공사가 투자비가 높다는 이유로 예산 책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60∼65달러 선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동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라고 한다. 중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 건설사 관계자는 28일 “유가가 배럴당 75달러는 돼야 중동 산유국들이 적극적으로 발주를 재개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유가가 회복되면서 다시 과거의 특수가 재현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마냥 기다리기엔 점차 낮아지는 발주량과 영업이익이 큰 부담이다.

주요 건설사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국내 주택시장 호황에도 불구하고 해외실적 악화로 대부분 시장 전망치를 밑돌며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현대건설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삼성물산은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대우건설도 46.5%가 감소한 영업이익을 냈다. 대림산업 정도가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고, GS건설은 흑자전환에 의미를 부여해야 했다.

◇불안한 신흥 아시아·중남미 시장=중동시장이 부진한 반면 아시아와 중남미 수주시장은 ‘깜짝’ 실적을 냈다. 지난 25일 기준 올해 아시아 지역의 총 수주액은 116억4502만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50% 정도 상승했다. 올해 중동 전체 수주액보다도 좋은 성적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우즈베키스탄(20억1000만 달러)과 투르크메니스탄(9억4000만 달러)에서 잇달아 대형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중남미 지역의 수주도 41억3355만 달러로 지난해보다 258% 상승했다. GS건설은 베네수엘라에서 26억1800만 달러 규모의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하지만 아시아·중남미 시장은 아직 리스크가 크다는 게 건설업계의 평가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한 국가들이 많아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엔 불안하다”며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해도 누구와 대화를 하고, 친분을 쌓아야 하는지 파악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인력을 파견하려고 해도 치안이 불안해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워낙 권력구도가 급변하고, 사회 시스템도 불안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기가 난감하다는 의미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영업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해당 지역 전문가 육성, 현지 시장 조사 등을 포함해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린다”며 “당장 유가가 낮아 중동실적이 나쁘다고 새로 시장을 뚫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래도 기댈 언덕은 중동”=아시아·중남미 등은 중동에 비하면 전체 시장규모가 크지 않아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지역에도 산유국들이 포진해 있어 저유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건설업계는 중동 외에는 해외시장의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저유가로 중동의 발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건설사들도 물량 중심에서 수익성 위주로 수주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며 “중동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예전보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최근 유가가 연초보다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등 차츰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는 중동시장의 수주 난맥상이 올해 하반기부터는 다소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가 발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알주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터미널 공사가 최근 사전자격심사(PQ)를 마치고 다음달 입찰 예정이다. 총 사업비가 30억 달러로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이 각각 외국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PQ를 통과했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풀리는 이란에서도 내년 이후 신규 공사 발주를 기대하고 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