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존엄사법’ 입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교계에선 무분별한 법제화는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실은 28일 “연명치료 중단의 절차 등을 담은 ‘임종 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존엄사법)안’을 다음달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정부와 조율해 이 법안을 만들었으며 지난 22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존엄사는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의 한 환자가 부인의 요구로 퇴원한 뒤 사망하자 환자의 동생이 의료진을 살인혐의로 고발하면서 쟁점으로 부상했다. 2008년에는 김모 할머니의 가족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내 논란이 됐다. 대법원은 이듬해 병원 측에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려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했다.
존엄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항암제투여 등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009년 대법원 판결 이후 병원에선 환자 본인을 상대로 연명치료 의사를 확인한 뒤 실행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확립된 절차는 없는 상태다.
김 의원이 마련한 법안에 따르면 존엄사 대상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에 한정된다.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의식불명 등으로 환자의 뜻을 직접 묻기 어려운 경우에도 유언장이나 일기장 등을 통해 본인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으면 가족 2명 이상의 동의로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 본인의 의사를 추정하기 힘든 경우에도 가족 전원의 동의가 있으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교계에선 가족의 동의만으로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경우 존엄사가 남용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관계자는 “생명은 어느 단계에 있든 존엄과 가치를 가진 존재”라며 “절대적으로 회복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면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으므로 가족이 연명치료 중단을 대리 결정토록 해서는 안 된다”면서 “어떤 치료도 효과를 볼 수 없는 말기환자이고 환자가 자기 의사를 자율적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의사들의 중복 진단과 병원윤리위원회의 판단 및 협의의 과정을 거친 경우에만 연명치료 중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군수도병원 박재형 교수도 “연명치료 중단은 본인의 의사 표명이 있는 경우에 한해, 연명치료 계획에 따라 허용해야 한다”면서 “단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제도 정착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존엄사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국교회언론회 심만섭 사무국장은 “생명의 주권은 신의 영역에 있다”며 “환자의 가족은 물론 본인도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연명치료에 따른 치료비 부담 등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원평 부산대 교수는 “존엄사가 법제화되면 병원의 제한된 시설과 가족의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끊을 수 있다”며 우려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생명은 신의 영역… 가족이라고 맘대로 결정할 수 없다” 정부·국회 ‘존엄사법’ 입법 추진 교계 우려
입력 2015-05-28 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