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21층 건물 외벽에 남성 5명이 매달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온 다섯 가닥 밧줄마다 한 사람이 간신히 앉을 작업용 선반이 달려 있다. 이들은 각자 선반에 몸을 고정시키고 창문과 외벽을 닦았다. 모두 왼손에는 양동이, 오른손에는 걸레를 들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줄타기 청소’는 멈추지 않았다. 빗줄기가 한층 거세진 오후 2시에는 청소 인원이 7명으로 늘었다. 세찬 비를 맞으며 공중에 높이 매달린 모습은 한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건물 주변에 설치된 ‘안전장비’는 없었다. 보행자들이 떨어지는 물에 맞을까봐 통행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선만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줄타기 청소 작업자를 부르는 정식 명칭은 ‘건물 외벽 청결원’이다. 하루 일당이 25만원으로 센 편이다. 대신 외줄에 목숨을 맡기는 탓에 극한 직업으로 통한다. 지난해 말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은 극한 알바의 하나로 이 직업을 소개하며 체험에 나서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도 위험천만하다. 사망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 3월 25일 전모(51)씨는 서울 용산구 미군기지 안에 있는 호텔 5층의 외벽을 청소하다 추락해 숨졌다. 지난해 11월 21일에는 경남 양산의 아파트 외벽 유리창을 마른걸레로 닦던 작업자는 로프 매듭이 풀리면서 19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안전 규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별도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건물 외벽 청결원은 2013년에야 한국표준직업 분류번호를 받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외벽청소 안전작업 매뉴얼’ 등을 내놓은 것도 이때다. 안전보건공단은 외벽 청결 작업 공정을 총 10단계로 나누고, 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위험 요인과 대책을 명시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안전 매뉴얼이 현장에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안전을 고려하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날씨다. 안전보건공단이 만든 매뉴얼에는 ‘풍속이 10㎧(초당 10m) 이상인 경우 등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작업을 피해야 한다’ ‘비·눈·바람 또는 그 밖의 기상상태 불안정으로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등 날씨와 관련된 안전수칙이 있다. 하지만 이날 만난 한 청결원은 “비가 오면 오히려 때가 불어 청소가 깨끗하게 잘된다”고 말했다. 외벽청소업체 관리자는 “빗물이 외벽을 미끄럽게 하기 때문에 작업을 중단하고 싶지만 건물주가 강행을 원하면 거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안전보건공단의 매뉴얼 작성에 참여했던 정병용 한성대 산업경영공학학과 교수는 “고소 작업자에 대한 전문 안전교육이 절실하다”며 “외주·하청·용역이 일상화된 구조 탓에 안전교육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손실로 여기고, 안전을 노동자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물 외벽 청소는 봄과 가을이 ‘성수기’다. 그만큼 이 시기에 사고가 잦다. 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발생한 건물 외벽 청소 중 사망사고가 모두 14건이라고 27일 밝혔다. 이 가운데 3∼5월에 일어난 게 4건, 9∼11월이 6건이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산업재해를 입은 건물 외벽 청결원은 73명에 이른다.
전수민 홍석호 기자 suminism@kmib.co.kr
[기획] 외줄에 삶과 생명을 걸고… 줄타기 청소, 안전도 줄타기
입력 2015-05-28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