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샐러리맨의 신화’ 한 편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전자회사 샐러리맨이었던 박병엽 전 부회장이 1991년 설립한 팬택은 한때 세계 휴대전화 판매고 7위를 기록하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법정관리 중이던 팬택은 26일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신청했습니다. 앞으로 2주 안에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팬택은 청산 절차를 밟고 퇴장하게 되죠.
초우량기업도 잘못되면 한순간에 몰락하는 기업 생태계에서 팬택의 소식에 유독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왜일까요. 대기업 틈새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일궈내 보통사람에게도 ‘인생역전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어서일 겁니다.
2010년 이탈리아에서는 교수를 꿈꾸던 27세 청년 자르코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르코네는 “넌 실력이 있어도 잘나가는 든든한 친인척이 없기 때문에 교수가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지도교수의 말을 듣고 절망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거죠.
이탈리아는 세습형 경제가 뿌리 깊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택시운전사조차 대부분 세습된다고 합니다. 일을 안 해도 물려받을 게 있거나 일해도 성공할 가망이 없다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잃게 되겠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처럼 한국은 계층 이동이 비교적 쉬운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계층을 뛰어넘는 사다리가 점점 사라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 경제연구소가 최근 설문조사를 해보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은 25%에 그쳤습니다. 75%는 부정적이었죠.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해야 할 30대는 20%만이 “자신의 노력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박 전 부회장이 팬택을 설립할 때가 바로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1조원 이상 부자 중 상속형 억만장자 비중이 84%라고 보도했습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라는 것이죠.
이에 비해 미국은 상속을 받아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33%였습니다. 일본도 부모 재산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12%에 불과하고, 중국은 0%에 가까웠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니 ‘삼포’ ‘오포’ 세대니 하는 용어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역전의 사다리’가 망가지면 개인은 희망을 잃고,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게 됩니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라도 절망이 없는 사회를 꿈꿔봅니다.
김태희 선임기자
thkim@kmib.co.kr
[친절한 쿡기자] ‘샐러리맨 신화’ 팬택, 끝내 좌절…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진 우리사회
입력 2015-05-28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