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중학교를 마치고 17세에 봉제공장에 들어가 시다(보조) 생활을 시작한 소녀. 35세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을 떠나 노동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12년 만에 귀국, 다시 동대문 창신동 공장지역으로 들어가 10여년을 여성 봉제노동자들과 보내다 2012년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이소선 여사의 딸’로 유명한 전순옥(62) 의원의 이력이다. 전 의원이 국회에 들어와 지난 3년간 매달렸던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29일 시행된다. 봉제를 비롯해 구두, 가방, 안경, 보석, 액세서리, 인쇄, 금속가공업 등 손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주로 도시 지역에 집적하는, 10인 이하의 소규모 제조업체 종사자를 뜻하는 ‘소공인’에 대한 국내 최초의 지원법이다.
때맞춰 ‘소공인’(뿌리와이파리)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전 의원이 전국을 돌며 찾아낸 수공업 장인들과의 인터뷰집이다. 전 의원이 논픽션작가 권은정씨와 써낸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에도 도시 골목골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싱을 돌리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제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책에 나오는 9명 장인들은 자기 손으로 삶을 떠받쳐온 이들만이 터득할 수 있는 기술과 노동, 인생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감동적인 통찰을 보여준다.
경력 43년의 봉제장인 김도영씨는 “내 숨결과 미싱이 한 호흡으로 흘러갈 때, 더 없는 평안이 찾아온다”고 일 하는 기쁨을 묘사한다. 55년째 구두를 만드는 유흥식씨는 “정직한 두 손으로 구두 만드는 일. 서울대 졸업장과도 안 바꾼다”며 깨끗하게 돈 버는 일의 자부심을 드러냈고, 가방 장인 김종은씨는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아름다운 물건이 만들어진다”는 철학을 들려준다.
전 의원은 그동안 ‘소상공인’이란 분류 속에 묻혀있던 ‘소공인’을 구분해 ‘소상인’과 나란히 배치했다. 19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살인적인 노동조건에 시달리며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했지만 80년대 후반 산업고도화와 함께 길바닥에 내버려진 채 지금까지 한 번도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소규모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이름을 찾아준 것이다.
27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전 의원은 “모두들 첨단기술과 서비스산업에만 눈이 팔린 사이, 소공인들은 지난 몇 십 년간 손기술 하나로 우리 경제를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쳐 왔다”고 말했다. 업체 수는 전국에 약 30만개, 종사자 수는 91만 명을 웃돈다.
전 의원은 “왜 이 사람들의 삶은 안 변했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여기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1989년 영국으로 떠났다가 98년 서울로 돌아왔어요. 돌아와 보니까 세상은 참 많이 변했는데, 제가 이전에 공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삶은 변함이 없더라고요.”
귀국 후 다시 공장으로 들어간 이유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전 의원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면 국회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고, 제조업에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소공인 특별법’은 그가 찾아낸 답이며, 그가 국회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또 봉제공 출신 국회의원이 이 시대 장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제 오빠는 엄혹한 시절에 아주 조그마한 바늘구멍이라도 뚫기 위해 자신을 던졌고, 어머니는 오빠의 유언을 받아서 그 바늘구멍을 온 몸으로 넓혀 놓으셨죠. 그 구멍 속에서 대안을 찾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소공인들은 손기술 하나로 몇 십 년간 경제 떠받쳐 와”… ‘소공인’ 출간한 전순옥 의원
입력 2015-05-29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