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누구를 따라가는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우리는 세태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길을 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따라가야 할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보낼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고 열흘 째 되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을 따라 행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한 것,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것 모두가 성령을 따라 행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셔서 마게도냐로 갔고, 예루살렘에서 박해와 환난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령에 매여 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에 매여서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지 못하도록 유혹과 공격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욕심과 정욕을 자극해서 유혹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요구와 육체의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육체의 욕구를 물리치고 성령의 요구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이란 육체의 욕구와 성령의 요구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성령의 음성과 육체의 소리를 잘 분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다른 목자의 음성은 알지 못하고 오히려 도망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수많은 육체의 소리와 세상의 소리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잘 알아듣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고 육체의 소리가 들려올 때 성령을 따라 행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죄가 가득한 육체의 욕구를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까. 성령의 음성과 육체의 욕심의 소리 중 어떤 것을 더 잘 알아듣습니까. 항상 성령의 음성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예민한 믿음을 갖길 소망합니다.
이희수 목사(서울 신성교회)
[오늘의 설교] 성령을 따라 행하라
입력 2015-05-28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