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 켜진 고령자 의료정책] 진료비 늘어도 환자만족도 제자리… 베이비부머들 본격 진입땐 어쩌나

입력 2015-06-01 02:17

국내에서 75세 이상 노인환자가 빠르게 늘면서 의료비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늘어나는 고령자의 의료비 부담으로 당사자와 가족들의 고민도 함께 늘고 있다. 은퇴 직후 인 65세 이상 노년층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질병 치료에 사용되는 의료비다. 실제 노인들의 절반 이상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 연금에서 높은 지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의료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환자의 급속한 증가로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도 늘면서 고령자들에게 투입되는 건강보험 재정부담도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예비노인 계층인 베이비붐 세대가 해당 연령이 될 경우 건강보험 진료비 부담이 급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노인의료에 대한 별도의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해 이들 노인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80대 부모를 모시고 사는 김준석(가명)씨는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고 있지만, 모든 부담을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짊어져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그나마 민간보험에 가입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부모님 의료비 부담으로 심각한 가정의 재정파탄 위기까지 처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는 "정부가 질병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고령의 부모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식 입장에서 느끼는 경제적 부담은 크다. 고령자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국가차원의 의료정책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노인 인구가 더 늘기 때문에 건강보험 진료비를 포함한 전체 노년층의 의료비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전체 국민의 7%에 불과했지만,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는 2017년 65세 인구비율은 전체 국민의 14%를 넘어서고,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65세 인구비율이 전체 국민의 20%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노인 진료비 비율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연령에 따라 전기노인(65∼74세), 후기노인(75세 이상), 예비노인(55∼64세)으로 구분해 진료비를 분석한 결과, 후기노인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진료비 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601만명, 진료비는 19조3551억원으로 전년보다 10.4% 늘었다. 전체의 11.9%인 노인인구가 진료비의 35.5%를 쓴 것으로, 진료비 집중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가 포함된 예비 노인이 노인인구로 진입하면서 진료비 부담이 더 증가한다는 점이다. 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앞으로 예비노인이 노인인구로 편입되면 노인진료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재정 관리를 위해 노인진료비 추이를 모니터링하고 효과적인 관리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양해야 할 노년층이 늘고 관련 의료비도 늘어나는 만큼, 고령사회에 적합한 노인의료정책 개선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 노인의료정책 ‘낙제점’, 인센티브제 등 맞춤형 정책 도입해야=우리나라 노인 1명당 약 3∼4개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 건강보험재정의 약 40%가 노인 진료비에 쓰이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이재호 대한노인의학회 정책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일반인과 거의 동일하게 노인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없다”며 “노인에 맞는 의료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질병 예방 중심으로 노인 의료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것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꼽았다. 노인층은 복합만성질환을 대부분 갖고 있어 만성질환 개수가 증가함에 따라 병원 이용량도 꾸준히 증가한다. 이에 노인들의 만성질환 발생을 사전에 줄이기 위해서는 예방적 건강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을 위한 인센티브제도가 운영된다. 하지만 노인들을 위한 별도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재호 정책부회장은 “노인 진료비에 대한 건강보험재정 부담을 줄이고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치료중심에서 예방중심으로 노인 의료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중증 질환이 발생되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하는 노인들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적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노년층이 금연과 금주 등의 생활습관 개선을 실천했을 때 건강보험료와 병원에서의 외래본인부담금을 경감하는 방식이다.

노인환자들을 대상으로 의료기관 한 곳을 지정해 진료를 받으면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선택의원제를 연계하는 것도 방법도 대안으로 꼽힌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노인들이 특정 병원을 선택해 이용할 경우에는 본인부담을 10%만 부담토록 하고 그 외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으면 30%를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를 연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고령자의 의료이용율이 증가하는 만큼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여러 곳의 병원을 방문해 중복처방, 부작용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약분업 시행 이후 수십조원이 넘는 비용이 조제료 등 약품비에만 치중돼 지출되는 것도 문제”라며 “약품에 대한 효능, 중복처방, 효과, 부작용에 대한 환자 모니터링이 약화되는 문제가 있는 만큼 선택분업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조제료를 절감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의료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실질적 제도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노인본인부담은 총진료비 1만5000원 이하일 때는 1500원을 지출하지만, 진료비가 1만5000원을 넘으면 정률제인 30%가 적용돼 4500원대로 상승한다. 이에 따라 경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은 부담이 된다. 신영석 부원장은 “노인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필요하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가 가구 보유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상위에 속한다는 분석도 있다. 노인본인부담금을 경감하려면 현행 정률제와 정액제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의료체계 개편 절실=국내 70세 이상 노인 입원 환자의 경우 17.5%가 전체 입원비의 64.6%를 소비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 상당수는 ‘암’이라는 질병에 걸렸을 때, 사망이 다가오는 시점에 의료비 부담이 절정에 이른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노인 건강생태주기별 보건사업의 대응전략’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노인들의 사망 전 의료비 지출규모는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에 의하면 2010년 사망자의 사망시점에서 36개월 이전의 월평균 의료비(건강보험진료비)는 36만7000원이었으나, 사망 2개월 전의 월평균 의료비는 260만8000원, 사망 1개월 전의 월평균 의료비는 284만6000원으로, 사망 36개월 이전에 비해 6.8배 증가했다. 우리나라 암환자의 경우, 암으로 인한 전체 의료비의 약 3분의 1 가량을 임종 한 달 전에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생애말기에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한 수술 또는 치료를 받으며 많은 의료비 지출이 발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통증관리가 미흡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등 최선이 아닌 차선의 치료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우덕 연구위원은 “환자 뿐 아니라 환자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말기암 등 중증 노인 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돼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 중심의 진료체계를 개편하고 환자 주거지 근처의 완화의료기관 또는 가정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송의뢰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허대석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공공 의료기관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말기암, 중증 노인 환자에게 입원일수를 늘려주는 것이 아니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방문 진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 노인 1000만명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해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em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