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경이로운 풍경과 신비한 이야기를 만나는 게 목적이라면 지중해를 둘러봐야 한다. 특히 한 때 번성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리키아 지역을 반드시 찾아보는 게 좋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리키아 제국은 최소 기원전 12세기에 세워졌다고 추측된다. 서쪽 달얀에서 동쪽으로는 안탈리아에 이르는 지역에 독립된 도시국가 23개가 모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어업과 무역업으로 번영을 이뤘다고 한다.
‘리키안 웨이’에서 만나는 고대 도시
안타깝게도 과거의 화려한 문화는 대부분 사라졌고 문자조차 해독할 수 없지만 신비한 옛 모습은 엿볼 수 있게 됐다. 16년 전부터 ‘리키안 웨이(리키아의 길)’이 발굴되면서 도보여행자들 사이에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도보 여행지’로 꼽히고 있다. 영국 ‘선데이 타임즈’에 의해 ‘세계에서 걷기 좋은 길 10’으로도 선정됐다. 도보로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자동차 등을 이용해 주요 도시만 들러도 옛 이야기를 어느 정도 담을 수 있다.
리키아 시대 유적을 대표하는 것은 돌무덤이다. 대표적인 도시가 터키 남서부 해안에 접한 물라 주의 달얀이다. 리키아의 서쪽 경계로 고대 카우노스 왕국이 있던 곳이다. 달얀 강에서 지중해 방향으로 배를 타고 가다보면 강가 산중턱 절벽에 그리스 신전 같이 ‘조각’된 무덤을 발견할 수 있다. 석굴 무덤으로 기원전 36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둥은 이오니아 양식이며 무덤 둘레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가 있다. 도굴로 훼손된 곳도 적지 않다.
당시 가옥은 대부분 목재로 지어져 보존이 어려웠고 지진까지 수차례 있어 돌무덤만 남게 된 것이다. 무덤은 목조로 된 주택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공들여 만들어졌다.
가파른 절벽 위에 돌무덤을 만든 것은 무슨 이유일까. 죽은 후에도 신과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싶어 했던 고대 리키아인들의 종교관과 관계가 깊다. 영혼의 불멸과 부활을 믿었던 리키아인들은 하늘에 가까울수록 더 빨리 부활한다고 믿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상에 가깝게 무덤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이다. 불멸의 삶을 바랐던 리키아인들은 아이러니하게 다른 이들보다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다. 말라리아가 크게 번졌기 때문이란다.
리키아인들의 무덤은 주로 산꼭대기에 있는데 물속에 잠겨 있는 곳이 있다. 터키 서남쪽 지중해의 한적한 휴양도시 카쉬에는 리키아인의 석관묘가 있다. 2세기 무렵 연거푸 일어난 대지진으로 7.6㎞에 이르는 리키아의 도시 텔메소스가 수중 6m 아래로 잠겼다. 잠긴 옛 도시는 카쉬에서 동쪽으로 14㎞ 떨어진 케코바 섬 앞에 있다. 배를 타고 둘러보면 바다 속에 건물의 토대가 그대로 보인다.
케코바 섬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마을 칼레쾨이에는 시대가 켜켜이 쌓여 있다. 고대 시메나 유적과 십자군 요새도 남아 있다. 뒤집어 놓은 배 모양을 한 리키아인들의 석관이 많이 남아 있다. 죽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다른 세계로 간다는 믿음이 반영됐다. 지진으로 물에 잠긴 것도 있지만 산 위에는 많은 석관이 그대로 있다.
또 다른 곳은 뎀레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 ‘미라’다. 서기 60년 사도 바울이 로마로 끌려갈 때 배를 탔다는 ‘무라’가 바로 미라다. ‘죽은 자들의 도시’로 불리는 이 일대 바위에 조성된 묘실만 8000여개에 이른단다. 특이한 것은 석실묘가 반원형경기장 바로 위에 있다. 옛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경기를 관람한 셈이다.
때로는 남겨진 역사보다 기록되지 않은 사실이 더 큰 울림을 준다. 해독되지 않는 문자를 남기고 사라진 리키아인들과 수중으로 가라앉은 도시가 터키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폐허로 변해도 아름다운 산비탈의 고원도시 사갈라소스
터키 서남부 유적 중 가장 짜릿한 곳은 안탈리아에서 북쪽으로 120㎞쯤 떨어진 도시 부르두르에 있는 고대국가 피시디아의 수도 사갈라소스. 이 고대도시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이뤄진 ‘아크다으’ 아래 해발 1450∼1600m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아크다으는 터키어로 ‘하얀 산’이다. 그리스·로마 시대 번성했지만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1985년 이후에야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돼 여행객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706년 프랑스인 탐험가에게 처음 발견됐다는 이곳에는 두 개의 아고라 뿐 아니라 반원형극장, 개인 도서관, 제우스 신전과 고대 그리스의 마지막 분수대가 있었다. 폐허처럼 보이지만 마치 고고학의 전시장 같다. 자연스레 허물어진 반원형극장에서는 시간의 깊이가 피부에 와 닿는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대극장이라고 한다. 복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겨진 돌덩어리들이 자신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이곳은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당한 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기원전 25년 로마 제국에 합류하며 번성했다. 로마의 ‘5대 현자’인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 때가 황금기다. 남아 있는 돌기둥과 건물도 그 전후로 지은 것이 많다.
도시는 두 차례 대지진과 541∼542년에 돈 전염병 이후 급격히 쇠퇴했다. 13세기 이후 인적이 끊겼고, 남은 돌덩이들만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세월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사람의 손길이 아직 덜 닿은 사갈라소스는 고대 유적들이 날 것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시간 탐험이란 상상마저 들게 한다.
달얀·카쉬·미라·사갈라소스(터키)=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