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법정관리 중단 신청… 24년 만에 역사속으로

입력 2015-05-27 02:03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팬택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결국 창립 2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팬택은 26일 이준우 대표이사 명의로 자료를 내고 기업회생절차 폐지 신청을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10개월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팬택의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주는 적합한 인수대상자를 찾지 못했다”면서 “팬택은 더는 기업으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돼 기업회생절차 폐지 신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 채권단 및 협력업체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여러분께 머리를 조아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그동안 팬택 제품을 사랑해 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팬택은 지난해 8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새 주인 찾기에 노력해 왔으나 마땅한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팬택은 국내 매출 비중이 큰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이후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히 위축돼 어려움을 겪은 측면이 있다. 중국이나 인도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팬택의 기술력을 보고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 이들은 팬택에 큰 매력을 못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팬택은 기업회생절차 폐지 신청을 함에 따라 앞으로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법원 관계자는 “폐지 요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고 주요 채권자,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의견을 조율한 뒤 폐지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회생절차를 폐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회생절차 폐지는 법정관리를 종료한다는 의미로 앞으로 팬택이 선택 가능한 방법은 청산뿐이다. 청산 절차가 완료되기 전까지 팬택을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난다면 극적인 반전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법원이 팬택의 회생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고 판단했을 때도 인수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택이 사라지면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팬택은 임직원 1100여명을 포함해 500여개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7만여명의 생계유지를 책임지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다른 기업과 달리 연구개발 및 생산을 모두 국내에서 하고 있어 팬택이 사라지면 대규모 연쇄 실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팬택은 지난 24년간 누적 매출 29조원, 누적 수출액 14조원을 올렸고, 최근 10년간 연구개발에 2조5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팬택 관계자는 “팬택은 탁월한 고용창출, 연구개발과 인재양성 등 창조경제 실현에 이바지하는 기업”이라며 “팬택의 파산은 정부의 창조경제 실현 노력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맨손으로 당당히 경쟁하며 성장해 온 기업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재계 전반에 주는 여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팬택은 1991년 박병엽 전 부회장이 설립했다. 초기에는 무선호출기(삐삐)를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했다. 97년부터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휴대전화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국내 최초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큐리텔과 SK텔레텍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기도 했다. 스마트폰 도입 초창기 한때 LG전자를 누르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이후 시장 상황 악화, 경쟁사보다 부족한 자금력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두 차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13년에는 창업주 박 전 부회장이 회사를 떠나는 등 초강수를 두며 회사 살리기에 매진했지만 결국 국내 ICT 산업에서 쓸쓸히 퇴장하게 됐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