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맞선 미혼모, 세상 앞에 엄마로 서다… 공익매장 ‘캥거루스토어’ 1호점 매니저 장희진씨

입력 2015-05-27 02:54
장희진(왼쪽) 김샛별씨(가운데 안경 쓴 사람) 등 미혼모 직원과 홀트아동복지회 관계자들이 22일 경기도 수원시 우만동 캥거루스토어 1호점에서 개점 준비를 하고 있다. 미혼모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이 매장은 28일 문을 연다. 수원=김태형 선임기자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어요.”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엄마가 된 장희진(23)씨에게 세상은 삭막한 곳이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고립’이란 말의 뜻을 몸으로 느꼈다. 언제나 함께해줄 것 같았던 남자친구는 희진씨의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연락을 끊었다. 알코올 중독이던 아버지는 그를 외면했다. 철저히 혼자였지만 뱃속의 아기를 버릴 수는 없었다. 희진씨는 어려서 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열아홉 살 ‘엄마’는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딸이 태어났지만 주위의 시선은 그로 하여금 딸을 숨기게 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굳이 아이가 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제가 얘기하지 않으면 아이 엄마인지 잘 몰랐어요. 그게 일하는 데 더 편하기도 했고요.”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달리 자신에게 붙은 ‘미혼모’라는 꼬리표가 싫었다.

그랬던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건 최근이었다. 딸이 자랄수록 세상의 편견을 향해 몸을 던져볼 용기가 조금씩 생겼다. “내가 움츠러들면 아이도 덩달아 그럴 것 같아서요.” 희진씨는 28일 개점하는 육아용품점 ‘캥거루스토어’ 1호점의 매니저로 취직했다. 캥거루스토어는 홀트아동복지회가 미혼모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IBK기업은행의 후원을 받아 만든 공익매장이다. 미혼모만 직원으로 채용한다. 이 매장에서 일한다는 건 미혼모임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희진씨는 그 길을 택했다.

지난 22일 경기도 수원시 우만동 1호점에서 만난 그는 코앞에 다가온 개점 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8시부터 나와 매장 청소와 인테리어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매장 곳곳은 아기 신발, 옷, 기저귀, 이유식 등 육아용품들로 채워졌다. 자신도 딸을 키우며 한 번씩 써봤던 물건이다. “아침에 매장 문을 여는데 기대가 되더라고요. 앞으로 뭔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란 믿음도 생기고요. 제 (육아)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해요.”

아직 개장 전이지만 호기심에 매장을 찾는 사람이 꽤 많았다. 희진씨를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바로 옆에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있거든요. 마주치는 일이 다반사죠. 다들 놀라요. 단순히 일찍 결혼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제가 미혼모였다는 걸 알게 되니까….” 처음에는 얼어붙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다가가 이것저것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희진씨는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라며 “사람들 시선에서 계속 도망 다닐 순 없잖아요”라고 했다.

이곳에 취직하는 게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홀트아동복지회의 1호점 직원 모집에는 단 6명이 지원했다. 500건이 넘는 채용공고 조회수와 달리 실제 지원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복지회 관계자는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미혼모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게 현실이에요”라고 했다.

희진씨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딸을 떠올린다. 다른 가족들과 다를지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수없이 되뇐다. “하루는 딸이 제 앞에 오더니 ‘엄마에겐 내가 있잖아’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희진씨는 이 말을 항상 마음에 담고 산다고 했다. 희진씨 옆에는 미혼모 동료 2명이 더 있다. 이들은 오전, 오후로 나눠 근무한다. 남는 시간에는 직업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함께 일한 지 1주일도 채 안 됐지만 서로 끈끈한 정을 느낀다고 했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미경 팀장은 “이들 모두 높이 뛰는 캥거루처럼 세상을 향해 도약하는 엄마가 됐으면 한다”며 “우리에게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이곳이 계기가 돼서 좋은 시선으로 바뀌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내년까지 캥거루스토어 4곳을 더 만들 계획이다.

수원=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