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터키=터키 남서부 데니즐리주에 있는 파묵칼레는 지구상 유일무이하게 경이로운 풍경을 지닌 석회층 온천 지대다.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 칼레(Kale)는 ‘성’이다. 석회를 품은 온천수가 산비탈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덮어버린 모습이 터키인들에게는 하얀 목화로 만든 성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과거에는 온천수가 산등성이에 흘러넘쳐 석회 웅덩이에서 목욕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고 나서는 온천물이 급격히 말라 물이 담긴 곳보다 없는 곳이 더 많아 보였다.
이곳에는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바닥은 탄산칼슘 때문에 딱딱하면서도 온천수의 미네랄 때문에 만질만질하다. 잔잔한 물결무늬가 끝없이 이어진다. 절벽의 한 면은 남해의 다랑논을 닮았다. 순백의 계단식 웅덩이가 품은 온천수는 파란빛을 띤다. 수온은 35도로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몸을 담글 수 있도록 허락된 구역에서는 비키니족 등 관광객들이 작은 온천 풀에 몸이나 발을 담근 채 사진을 찍거나 담소를 나누며 휴양을 즐긴다.
소금산, 빙산, 설산을 연상시키는 이곳에 고대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에서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이집트 클레오파트라와 로마 황제들이 다녀갔다고 전해질 만큼 유구한 역사와 명성을 자랑한다.
온천 지대 너머 구릉 위에는 페르가몬 왕국이 세운 고대 도시의 유적이 있다. 기원전 130년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로 불렀다. 완만한 경사의 산자락 중턱 평원에 아폴론 신전과 주거지, 다양한 형태의 무덤군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1988년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묶어 세계복합유산에 등재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찾은 또 한 곳은 안탈리아 동쪽 고대도시 시데이다. 이곳에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황제가 함께 일몰을 봤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여기서 안토니오스를 유혹하기 위해 전라(全裸)에 가까운 의상으로 신전 앞에 서 있었고, 이를 본 안토니아가 첫 눈에 반해 클레오파트라에 빠졌다고 한다. 해변가에 기둥만 몇 개 덩그러니 남아 있는 아폴론신전 앞에서 조우하는 시데의 일몰은 클레오파트라의 전설까지 덧씌워져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분홍·파랑·하양의 3색 터키 여행=터키 남부 고원지대에 있는 으스파르타는 전 세계 장미 오일의 65%를 공급하는 분홍색 장미의 도시다. 시청 뒤에는 1888년 불가리아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장미 씨앗을 몰래 지팡이에 숨겨온 ‘터키판 문익점’ 이스마일 에펜디를 추모하는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으스파르타가 자랑하는 장미 마을은 규네이켄트. 평균 고도가 해발 800m 이상인 산악지역으로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아 시원해 향이 진한 장미를 재배할 수 있다. 오는 30∼31일 일대에서 장미 페스티벌이 열린다. 6월부터 본격 수확되는 장미꽃은 4t(약 100만 송이)을 모아야 오일 1㎏이 나온다. 장미 오일은 고급 향수와 화장품의 필수 원료로 사용된다.
분홍색 향기가 넘치는 으스파르타는 파란색을 통해 눈도 즐겁게 해준다. 으스파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30∼40분쯤 차를 달리면 해발 924m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터키에서 네 번째 큰 에이르디르 호수를 만나게 된다. 넓이가 517㎢로 여의도의 61배에 달해 바다를 연상케 한다. 산 정상에서 순전히 지하수로 이런 코발트 빛 호수를 채운 것이 경이롭다.
짙푸른 호수 물빛과, 도로로 이어져 가늘고 긴 반도처럼 보이는 작은 섬인 ‘예실’ 섬 등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호수다. 호수 남서쪽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호수 경관을 즐기며 식사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방갈로식 식당이 있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마을의 붉은색 지붕을 한 집들과 푸른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빛, 그리고 가느다란 막대기 끝에 달려 있는 듯이 보이는 예실 섬 풍경이 그림 같다.
에게해 남쪽 물라주에 위치한 보드룸은 ‘백색 도시’이다. 건물에 흰색 페인트만 허용되면서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집들과 푸른 바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요트들이 어우러져 ‘터키의 산토리니’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고향이기도 해 역사적 발자취를 찾아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보드룸을 대표하는 명소인 보드룸 성은 십자군 전쟁 말기인 15세기에 십자군인 요한 기사단이 20년 동안 건설한 요새다. 당시 유럽 각지에서 온 기사단이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각자 자신의 나라를 상징하는 탑을 세워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베드로의 성’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도시는 베드로의 성이 있는 곳이란 뜻의 페테리움이라 불렸는데 그것이 보드룸이란 지명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현재 보드룸 성은 해저 유물을 전시하는 수중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침몰선에서 인양한 보물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파묵칼레·시데·으스파르타·보드룸(터키)=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