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모든 날이 소중하다

입력 2015-05-27 00:10

“바다는 바라보는 거야.” 여기까지 와서 물에 들어가지 않냐 보채던 친구에게 내가 한 말이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스쿠버다이빙을 체험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거리를 두고 바라만 봤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은빛 물고기, 파란 물빛에 부각된 색색의 꽃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생명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해 나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뒤늦게 배운 수영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잠수했을 때 물의 소리를 듣게 했고, 힘을 뺐을 때 오히려 큰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도 배웠다.

어릴 때 나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의 구분이 명확해서 뭐든 딱 잘라 말하곤 했다. “그 일은 절대 안 할 거야. 내 인생에 무엇 따윈 없을 거야.”

하지만 내 인생에 절대 없을 줄 알았던 ‘수영’을 배우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장담할 수 없다니까.” 이제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무엇이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내 주변의 것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늘 같은 길로 다니던 내가 낯선 산책길을 발견했고 길을 잃어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 있지만 몰랐던 ‘새로운 것’에 감사했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더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했다.

요즘 나는 ‘도로주행’을 받고 있다. 차를 살 형편도 아니었고 걷는 것을 좋아해서 운전할 필요가 없다 여겼지만 얼마 전 생각이 바뀌었다. 다리를 다쳐 오래 걷는 일이 힘겨웠고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던 날 그동안 보던 풍경이 전혀 다른 형태로 느껴졌다. 늘 지나던 길이 뜻밖의 길과 통해 있었고 하늘과 산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이렇듯 내가 단정 지은 것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 나이가 되었으니 저건 하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버린 후로 일상의 반복도 조금씩 변주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같은 날이지만 날마다 다르고, 그렇기에 모든 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