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이며 보편적 가치에 기여한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지난 15일 내린 결정이다. 일단 등재를 권고한다는 결론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일본의 ‘희망’과는 상당히 벗어나 있다. 역사 분야에서의 ‘정상국가화’를 추진하려던 일본 정부의 노림수가 한풀 꺾인 것이다.
◇일본 근대 산업시설, 문명 전환인 ‘산업혁명’ 드러내지 못해=일본 정부는 등재를 신청하면서 기간을 1850∼1910년 사이의 60여년으로 잡았다. 1910년 이후 발생한 한일합병 등 제국주의·군국주의 침략을 숨기고, 비서구 지역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 2차대전 승전국으로서 ‘전범국’ 멍에를 쓰지 않은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이코모스가 해당 시설들에 대해 일본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했음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선을 그으면서 일본의 ‘꼼수’는 허사가 됐다. ‘산업혁명 유산’이려면 해당 시설들이 1세기 이상 역사를 통한 문명 변동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일본 측의 신청서는 산업혁명으로서 필요한 요소들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혁명으로 지칭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기술적 진보만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1850∼1910년 이후 역사도 반영돼야… 이례적인 제삼국(한국) 입장 수용=당초 이코모스는 일본의 산업화 기간을 일본 정부가 신청한 대로 1850∼1910년 사이로 한정하려 했다. 194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조선인 강제징용 등이 반영될 여지를 없애려는 일본 측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려던 것이었다.
이코모스는 일본의 산업화를 세 단계로 나눴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인 1850∼1860년대의 ‘산업화 태동기’,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대의 ‘서구 기술 도입·습득 시기’, 메이지 시기 말기인 1890∼1910년대의 ‘자생적 산업화 시기’ 등이다. 이코모스는 이 같은 발전이 조선업·철강업·광산업을 기반으로 이뤄졌음을 지적한 뒤 “명백한 군사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코모스는 이러한 역사적 설명에 더해 결정문 말미의 ‘권고사항’에서 “등재 후보지를 잘 설명할 해석 전략을 마련하라.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체 역사’가 명시되면서 조선인 강제징용 또한 포함될 여지가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전체 역사’ 문구가 추가된 건 강제징용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의는 신청 당사국과 이코모스 간 양자 협의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제삼국인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전체 역사’ 문구는 유산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국들 사이에서도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초 국제사회는 강제징용과 관련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지만 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공론화된 것이다. 일본 정부 또한 ‘전체 역사’ 문구가 추가된 데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이코모스와 세계문화유산 위원국들에 강력히 제기한 결과로 본다”면서 “향후 이러한 이코모스 권고를 바탕으로 한·일 양자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세계유산위원국들을 대상으로 우리 입장을 알리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日 과거사 왜곡] ‘非서구 첫 산업혁명’ 부각 日 꼼수 안통했다
입력 2015-05-26 18:25 수정 2015-05-26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