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 이어 생활고?… 부천 세 자매 자살 ‘미스터리’

입력 2015-05-26 02:37
경기도 부천의 한 아파트에서 세 자매가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이 발견된 지하주차장 입구의 아치형 플라스틱 차광막이 부서져 구멍이 뚫려 있다. 연합뉴스

금요일인 22일 오후 4시쯤 이웃 할머니를 본 김모(29·여)씨는 밝게 인사했다. 경기도 부천 역곡동의 아파트 단지에도 황금연휴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씨는 시장 가는 길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맛있는 거 사러 가냐”고 묻자 김씨는 작고 얌전한 목소리로 “네”하고 답했다. 평소에도 상냥한 김씨였다.

김씨 위로는 언니가 4명 있다. 첫째와 둘째는 출가하고 나머지 세 딸이 어머니(62)와 한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막내인 김씨가 어릴 때 지병으로 숨졌다. 어머니 박씨는 포장마차를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딸들은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취직했다.

자매들은 사이가 좋았다. 셋째(33)와 넷째(31)도 막내처럼 밝고 싹싹했다. 이웃들이 말을 걸면 환한 미소와 생기 있는 대답을 돌려줬다. 함께 다닐 땐 꼭 붙어서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밌는지 자주 웃었다. 아침엔 항상 팔짱을 끼고 출근했다. 이들은 간호사나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인 25일 새벽 어머니 박씨는 평소처럼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박씨는 전날 밤 11시 넘어 귀가했다. 세 딸은 침대 없는 큰방에서 함께 생활했다. 박씨가 방문을 열었을 때 막내는 자고 있었고 셋째와 넷째는 TV를 보고 있었다. 이 아파트 아래에서 ‘쿵’ 소리가 난 건 오전 4시쯤이었다. 박씨 집은 12층이다.

야간근무 중이던 경비원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바닥에 두 여자가 쓰러져 있었다. 바로 위 아치형 플라스틱 차광막은 부서져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다. 경비원은 휴대전화를 꺼내 119를 눌렀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이들은 박씨의 셋째, 넷째 딸이었다. 경찰은 박씨 집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박씨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거실 반대편 뒷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었고, 큰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막내딸마저 숨이 끊어져 있었다. 목엔 졸린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큰방 탁자 위에 A4용지 세 장이 펼쳐져 있었다. 세 자매가 각각 종이에 두세 줄씩 볼펜으로 쓴 것이었다. ‘사는 게 힘들다. 편하게 가고 싶다. 화장해서 뿌려 달라’는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미안하다는 내용도, 원망하는 내용도 없었다고 한다. 박씨는 딸들 글씨라고 했다. 경찰은 동반자살로 추정한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자매들은 일하던 어린이집이 지난 2월쯤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친척들은 “가정형편이 어렵지는 않았던 걸로 안다”고 전했다. 세 자매가 살던 집은 어머니 소유다. 부천 원미구청 관계자는 “시세가 2억5000만원 수준”이라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고 생활고에 따른 상담 이력도 전혀 없다”고 했다.

빈소는 이날 오후 인근 병원에 차려졌다. 세 젊은 여자의 영정 사진만 나란히 세워진 빈소는 풀리지 않은 죽음의 이유만큼이나 황망한 풍경을 하고 있었다. 꽃 한 송이 없는 빈소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세 자매의 작은엄마, 큰엄마 등이 들어왔다. 어머니 박씨는 보이지 않았다. 한 가족이 “(애들 엄마는) 지금 억장이 무너져서 우리도 말을 못 건다”고 했다. 다른 가족은 세 자매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을 더듬다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평범하게 공부도 잘하고 화목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원미경찰서 관계자는 “사망자 어머니가 정확히 알지 못해 자세히 파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2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을 실시하고 본격적으로 주변인 등을 상대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부천=심희정 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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