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내놓는다.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쟁점사항을 끝내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노·정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28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하는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에서 임금피크제 도입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 방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청회에서 취합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르면 6월 초 정부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방침이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25일 “노사정 대화 결렬 이후 관련 토론회와 발언 등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정부 입장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에 대한 각계 의견 등을 반영해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처우,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를 말하는데, 근로기준법은 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에는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 임금을 정년 전부터 일부 삭감하기 시작하는 임금피크제는 이 같은 취업규칙 불이익에 해당할 수 있다.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측이 일방적으로 도입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위한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경영계 주장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노조가 반대하더라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이 ‘사회 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이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고 있다. 정부는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낮추지 않으면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여 청년 고용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도 첨예한 갈등 요소였지만, 지난 4월 협상 결렬 이후 이를 재협의하기 위한 노동계와의 대화는 사실상 전무했다. 노동계는 국내 민간 기업에서 현실적으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임금 삭감의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드라인이 나온다 해도 과거 통상임금 갈등 때와 마찬가지로 법적 분쟁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는 사실상 내년 실시될 정년 연장을 앞두고 임금을 깎지 않으면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재계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해석해 봐야 통상임금 때처럼 결국 법원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28일 공청회 자체를 원천 봉쇄한다는 입장이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존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기업의 정년 실태와 퇴직관리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중·고령자 고용의 증가가 청년층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증거가 없다”고 논박하기도 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기획] 정부, 노조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일방 추진
입력 2015-05-26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