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안 순간, 우리의 사랑을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혼하자고 했어요.”
축구를 좋아하고, 지프차를 모는 활달한 성격의 여교사 로라 스토츠는 7년 전 처음 만난 동료 교사 에릭 파월(36)과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 록빌의 한 공원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하객들은 학생들이었다. 공원에서 야외수업(Field Day)이 펼쳐진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로라 선생님의 결혼식이었다.
아이들은 꽃을 하나씩 손에 들고 신부로 변신한 로라 선생님 앞에 줄을 섰다. 로라 선생님은 그 꽃을 들고 천천히 신랑 에릭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둘만의 성혼서약을 낭독하고 키스를 했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로라는 지난 5년간 에릭과 동거했지만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에릭은 그녀로부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이후 한 번도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3월 에릭이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축구를 하다가 부딪히거나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닌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루게릭병은 근육과 신경이 마비되는 난치성 질환이다. 나중에는 사지를 못 쓰게 되고 호흡근까지 움직이지 않아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수십년간 생존하는 경우도 있지만, 10년 생존율이 평균 10%밖에 안 된다.
에릭의 증세는 더욱 고약하다. 앞으로 ‘길어야 2년’이라는 시한부 사형선고를 받았다. 로라는 어쩌면 그 기간이 1년이 채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에릭의 병세는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좋아하던 축구를 할 수 없다. 2주일 전까지 집 앞 산책은 가능했으나 1주일 전부터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보행이 불편해졌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졌다.
로라는 병원을 나서 텅 빈 사거리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차 안에서 에릭에게 말했다.
“우리, 결혼해요.”
에릭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을 때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랑하는 여인의 곁을 영원히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번민하는 날이 많았다. 에릭의 인생에 결혼은 사치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일이었지만 결혼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로라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에릭을 돌보기 위해 교직도 그만두기로 했다.
어렵게 합의가 이뤄진 뒤 두 사람의 결혼절차도 병세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됐다. 로라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을 붙잡아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라는 결혼식 직전 에릭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알록달록 물들였다. 그동안 동료들에게 한 번도 함께 살고 있는 에릭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그녀는 “에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
루게릭병 남친과 결혼한 숭고한 사랑… “함께할 시간 많지 않아… 우리 사랑 자랑하고 싶어”
입력 2015-05-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