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취업규칙 변경만으로 임금피크제 도입하겠다니

입력 2015-05-26 00:50
내년부터 60세 정년연장이 시행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지난달 8일 무산된 직후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사안에 대해 후속 조치를 추진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협상 결렬의 결정적 요인은 ‘손쉬운 해고’ 안건이었다. 이 때문에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노동계가 강력히 반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독자적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부분은 노사를 상대로 별도의 설득 노력을 기울이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다.

하지만 정부의 추진 방향을 보면 속내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오는 28일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을 주제로 공청회를 연다. 여기서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노조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 문제를 논의한다. 대타협 결렬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제동이 걸렸으니 노사정 선언이나 단체·임금협약이 아닌 취업규칙 변경만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우회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다는 의도다. 학계, 경영계, 노동계를 모두 초청해 그럴듯한 모양새도 만들었다.

취업규칙이란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로 사용자가 정한다. 단,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데 정부는 공청회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이 노사 모두에 이익이 되므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을 노조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사회 통념에 비춰 변경의 합리성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판례가 일방적 임금피크제 도입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지만 섣부른 시도는 부작용만 초래한다. 공공 부문 임금피크제에 이어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을 발표한 정부가 민간 현장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자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자 조급증을 노출하고 있다. 무리한 가이드라인 제시는 또 다른 충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노사정 대화는 왜 했는가. 노동계 반발이 불 보듯 하다. 민주노총 등은 공청회 불참은 물론 공청회 개최 자체를 원천봉쇄하겠다고 한다.

물론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사 자율의 토대에서 마련돼야 하는 게 원칙이다. 정부가 포기하지 말고 노동계를 더욱 설득해 공론의 장으로 다시 나오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설령 정부 주도로 추진하더라도 노사 의견이 다른 부분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 노동계도 대화 테이블에 복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