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의 한 농가는 지난 4월 고라니 피해를 입어 감자를 다시 심어야 했다. 한창 감자를 파종한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고라니는 이제 갓 새순이 나온 감자의 잎만 골라 먹어 한해 농사를 망치게 했다. 감자는 미리 싹이 틔어야 심을 수 있어 파종 준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결국 파종 시기를 놓친 농가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한 양상추 밭도 검은 비닐 곳곳이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4월 파종을 시작해 한창 자라고 있어야 할 양상추의 절반 이상이 갉아먹은 듯 뜯겨 있거나 뿌리째 뽑혀 있었다. 주범은 역시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였다. 이 농가는 1000만원이 넘는 손해는 봤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에서도 지난 달 파종한 옥수수 밭이 고라니의 습격을 받았다.
25일 전국 지자체 등에 따르면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아 농민들이 고라니와 전쟁을 하고 있다. 천적이 없는 고라니는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피해 농작물이 아직 모종단계인 데다 농가 대부분이 신고에 익숙하지 않아 피해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고라니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된 대표적인 야생 동물로 사슴과의 초식 동물이다. 주로 잡초, 나무의 어린 싹, 과실 등을 좋아하며 농작물의 새싹과 뿌리까지 먹어 치운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피해 방지단 운영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해마다 되풀이하는 미봉책에 불과한 실정이다.
충북 옥천·증평·괴산, 강원 인제·홍천·삼척, 경북 울진 등은 오는 10월까지 피해 방지단을 운영하고 있다. 시·군 별로 20명 안팎인 피해 방지단은 유해 야생동물이 출몰하거나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출동한다. 포획 대상은 고라니와 멧돼지, 까치, 멧비둘기, 청설모, 꿩 등이다. 지난해 충북에서는 3253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고라니 1만2535마리, 까치 2444마리, 멧돼지 560마리 등 야생동물 1만6785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최근 수렵용 총기의 심사와 관리가 엄격히 제한되면서 이마저도 까다로워졌다. 포획단원은 2명 이상의 신원 보증인을 경찰서에 데려와야 총기를 받을 수 있다.
충북도는 피해 보상에 필요한 예산을 지난해보다 크게 늘렸다. 올해 시·군비를 포함해 4억3300만원의 피해 보상비를 마련했다. 지난해 보상액 3억1700만원보다 36.6%(1억1600만원) 늘어난 것이다. 피해자가 해당 시·군에 신고하면 현지 조사와 논의를 거쳐 보상금이 지급된다. 또 올해 9억3300만원을 들여 전기울타리나 경음기, 철선 울타리 등을 설치하면 설치비의 60%를 지원한다.
충북도 관계자는 “고라니의 상위 포식자가 없어 개체 수가 늘어났고 활동 범위까지 넓어지고 있다”며 “겨울철 번식기를 지나 앞으로 더 많은 고라니가 출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전국종합
농작물 싹쓸이 농민의 敵 고라니… 천적 없어 기하급수적 늘어
입력 2015-05-26 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