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이렇게 끝맺은 글을 남기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2009년 5월은 혼란의 소용돌이였다. 여차하면 초헌법적 상황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살얼음판 같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을 둘러싼 시각의 차이와 가치관의 충돌로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졌으나 마지막 길을 엄숙하게 보내는 틀은 지켜졌다.
유족들은 당초 조촐한 가족장을 원했다. 검찰 수사로 압박을 받다 죽음을 택한 만큼 정부가 주도하는 국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은 하루 만에 국민장을 수용했다. 친노계 한 인사는 “유서에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한 것은 화합과 통합을 원했던 것 아니겠느냐”며 그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가장 두드러진 행보를 보인 인물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다. 온통 분노로 뒤덮였던 봉하마을에서 그는 냉정을 잃지 않으며 고인의 마지막을 지켰다. 사실상 상주 역을 맡은 그는 유족과 정부 사이를 중재하며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고인의 역사적 자리, 평생의 역정과 유지까지 조율해 나갔다. 여당 조문단이 항의 시위에 막히자 그는 마을 입구까지 나가 “큰 결례”라면서 양해를 구했다. 박근혜 당시 여당 대표가 별도로 조문을 갔을 때도 상주의 예를 갖췄다.
6주기를 맞은 봉하마을에서 일어난 ‘사태’는 당시와 비교된다. 추도식에 참석한 여당 대표에게 인신공격을 퍼부었고 야당 내 대립세력인 비노 인사들에게도 물병이 날아갔다.
노건호씨 추도사는 예(禮)가 아니다. 추도객에게 할 말이 있으면 식을 마친 뒤 하면 된다. 국민이나 지지자를 상대로 밝힐 게 있다면 추후 별도의 성명서를 내면 된다.
비판의 언어도 도를 넘었다.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오셨다”거나 “불쑥 나타나시니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다”는 건 비아냥이다. “내년 총선에는 노무현 타령, 종북 타령 좀 안 하시려나 기대가 생기기도 하지만 뭐가 뭐를 끊겠나 싶기도 하고”라는 구절은 저속한 속담을 연상시키는 독설이다. 생사의 갈림에서 생을 되돌아보는 숙연한 자리에 쓸 언어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비단 노건호씨의 경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유족이 울분을 토로한 것이라면 굳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해프닝으로 치부하면 된다. 하지만 그의 추도사는 지난 대선 후 중립적 인사가 야당의 대선 패배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한 평가보고서를 밋밋하게 수정하도록 만들었던 정파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통합이나 국정 협조정신을 내건 노선에 반대하며 ‘선명 야당’만에 집착하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이런 ‘친노식 양태’는 정치적으로 마이너스다. 흠집 내기는 역효과를 부른다. 한 줄 기사에 그쳤을 여당 대표의 참석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오히려 “친노가 그렇지 뭐”라는 냉소를 불러일으키며 스스로의 고립화를 부를 뿐이다. 무엇보다 이를 기화로 우리 사회의 대립과 반목을 증폭시키고 이견이 서로 만나는 길을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문재인 대표는 이번에 화살을 피해갔지만 그가 최근 대권 주자로서 나아가고 있는 통합의 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봉하마을’에서 보다 발전적으로 전진할 수 없는 것인가? 6년 전 성숙한 추모의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는 것인가? 최소한 고인의 마지막 글에 배어있는 절제된 정신을 되살릴 수는 없는가. 마음이 무겁기 짝이 없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
[돋을새김-김의구] 노건호씨의 경우
입력 2015-05-26 03:01 수정 2015-05-26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