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최계운] 투수와 리더십

입력 2015-05-26 00:20

요즘 프로야구 인기가 높다. 특히 대전 연고의 한화 이글스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홈경기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화끈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플레이는 흥행몰이에 부족함이 없다. K-water가 본사를 대전으로 옮겨온 지 40년이 넘는 까닭에 직원 중에도 한화 팬이 많다.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등의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필자조차 김성근 감독과 경기 결과 등에 대해서는 심심찮게 전해 듣는다.

이달 초 수돗물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등을 알리는 한편 지역 기업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K-water Day’ 행사를 가졌다. 평생 처음 ‘시구’를 경험해 보았고, 모처럼 관중석에서 소리도 질러봤다. 이날 한화는 경기에서 아쉽게 졌다. 하지만 경기 내내 운동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함성과 열기 덕에 승패와 관계없이 필자도 절로 마음이 들떴었다.

경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투수 리더십’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타자가 아무리 점수를 내도 투수가 더 많이 실점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야구다. 자기 팀 투수가 점수를 주지 않으면 지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투수는 여러 능력을 요구받는다. 체력, 제구력, 구속, 구질, 이닝 소화능력 등이 그것이다.

그날 투수 리더십과 관련해 처음 느낀 건 ‘투수가 자꾸 뒤를 돌아볼 때 팀이 흔들린다’는 거였다. 내야수, 외야수를 믿고 포수 및 벤치와의 지속적인 소통 속에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해야만 위기를 넘기고 공격을 막고 이닝을 종료할 수 있다. 리더는 조직 구성원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조직 구성원들이 믿음으로 자신을 따르게 해야 한다.

점수를 주고받고 상황이 바뀌면서 셋업맨, 구원투수 등 여러 중간계투 투수들이 등장했다. 분위기 반전, 상대 흐트러뜨리기, 팀에 자신감과 활력 불어넣기, 마무리 등 이들의 역할은 다양했다. 분명한 건 새로운 구질,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다. 보는 동안 머릿속에 리더십과 관련 있는 여러 개의 사자성어가 스쳐갔다.

시아비아(是我非我), 투수는 자신에 대해 헛갈려서는 안 된다. 문제는 자신이지 타자나 주자, 포수가 아니다. 스스로를 간수하는 게 급선무다. 자신의 약점을 바로 알고 자신만의 강점을 바탕으로 타자와 승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기왕불구(旣往不咎), 이미 지나간 일을 탓하며 미련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지난 실수는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일, 현 상황에 집중하는 일이 중요하다.

평지과협(平地過峽), 끊어질 듯 이어지다 다시 불쑥 되솟는 지세(地勢)를 이르는 말이다. 투수의 공도 이와 같아야 한다. 구질이 다양해야 하고, 의표를 찌르는 결정구가 있어야 유리한 위치에서 타자와 승부를 겨룰 수 있다. 경영자나 리더도 한결같은 우직함 속에서 때로 번득이는 지혜와 날카로운 안목을 발휘해야 한다. 고보자봉(古步自封), 전족을 풀어줘도 예전 걸음에 얽어매어선 안 된다. 오랜 타성에서 벗어나는 투수, 어제와 같은 듯 다른 까다로운 공을 던지는 투수가 좋은 투수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믿음직하고 훌륭한 투수는 광이불요(光而不耀),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 투수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잠시 반짝인 투수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래 빛난 투수는 몇 안 된다. 성실한 연습, 쉼 없는 연구, 강한 의지, 긍정적인 마음가짐만이 선동열, 최동원, 류현진을 만든다.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거나 한 순간의 스포트라이트를 추구해서는 훌륭한 리더나 경영자가 되기 어렵다. 한화 이글스의 가을야구를 기대한다.

최계운 K-water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