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는 한때 전국의 수재 집합소였다. 서울고와 경복고 용산고 등도 꽤 명문이었으나 경기고에 비할 바 아니었다. 졸업생 720명 중 400명 이상이 서울대에 진학할 정도였다. 경북고 부산고 경남고 광주일고 대전고 전주고 등 지방 거점 명문고들이 해당 지역 수재들을 끌어모았으나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학생은 경기고 진학을 꿈꿨다. 이 때문에 경기고엔 절반가량이 지방 학생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학교로 1900년 개교한 경기고는 지금까지 5만4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박정희정부의 고교평준화 정책 실시와 함께 교사(校舍)가 종로구 화동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지면서 옛 명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마지막 시험 세대인 1976년 졸업생(72회)과 그 이전에 졸업한 선배들은 아직도 각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고 출신 대통령은 과도기 간선제로 선출된 최규하 전 대통령뿐이다.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두 번이나 대권에 근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국무총리는 최 전 대통령을 포함해 9명이나 배출했다. 이범석(초대) 박충훈 진의종 이회창 이홍구 고건 한덕수 정운찬.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에 지명됐으나 낙마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경기고 마지막 시험 세대다. 고교 동기 450여명이 서울대에 진학했으며 대학교수 169명, 법조인 44명, 의사 88명을 배출했다(국민일보 5월 25일자 보도). 경기고 졸업생들은 스스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세계주의자)이라 부른다. 정치성향이나 출신지역이 다양해 배타적 단결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당연히 좋은 점이다.
황 후보자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총리에 임명되더라도 그런 자세를 견지해야겠다. 총리에게는 행정능력 못지않게 국민통합이 중요해서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경기고 출신 국무총리
입력 2015-05-26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