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발 난사했는데 무죄… 반복되는 美 경찰살인 면죄부

입력 2015-05-25 02:47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현지법원이 2012년 11월 흑인 2명이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한테 137발의 총격을 받고 숨진 사건에 대해 23일(현지시간) 무죄를 선고하자 시민들이 숨진 흑인들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위는 당시 흑인들이 탔던 차량에 남아 있는 총탄 흔적. 아래는 흑인들의 몸에 맞은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설명하는 재판 관계자의 모습.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미국에서 경찰 13명이 137발의 총격을 가해 비무장 흑인 2명을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일고 있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과잉 사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돼온 사건이어서 흑인 사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클리블랜드를 관할하는 오하이오주 퀴아호가 카운티 법원은 23일(현지시간) 흑인들에게 총격을 가한 마이클 브렐로(31) 경관에게 적용됐던 고의적 살인과 상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사건은 2012년 11월 29일 발생했다. 당시 경찰은 한 차량에서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는 신고를 접한 뒤 이 차를 쫓기 시작했다. 차량에는 운전자인 티머시 러셀(43)과 여성 지인인 말리사 윌리엄스(30)가 타고 있었고 62대의 경찰차가 이들을 쫓았다. 두 사람은 노숙자 쉼터에서 알게 된 사이로, 이날 드라이브를 하러 나왔었다. 그들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경찰이 쫓아오자 시속 160㎞로 도망갔다. 이후 36㎞ 정도 가다가 결국 갓길로 멈춰 섰고 이때부터 경찰의 총격이 시작됐다.

13명의 경찰이 총을 쐈으며, 12초 뒤에는 브렐로 경관이 차량에 뛰어올라 차량 지붕에서 아래를 향해 최소 15발을 더 쐈다. 브렐로 혼자서만 모두 49발을 발사했다. 13명 가운데 9명이 특히 총을 많이 쐈는데 이 중 브렐로를 포함해 8명이 백인이었고, 1명이 히스패닉계였다. 탑승자 2명은 각각 20여발을 몸에 맞아 숨졌다.

그런데 나중에 조사해보니 총소리는 차량이 급발진하면서 낸 소리를 착각한 것으로 판명됐고, 차량 안에서는 어떤 총도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은 충분한 총격이 가해졌고 위협도 제거된 상황에서 차량 지붕에 올라가 거듭 총을 쏜 것은 고의적인 살인이라며 브렐로를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관인 존 P 오도넬 판사는 검찰 주장과 상반되게 “위협이 여전했기에 총격은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판결 내용에 다들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미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경찰의 지나친 무력 사용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을 대표적인 공권력 남용 사례로 지목한 바 있다.

게다가 클리브랜드 시 당국도 경찰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 이미 유족들에게 300만 달러(33억원)의 배상금을 주고 소 취하에 합의한 상태다.

무엇보다 유족과 흑인들이 반발하고 있다. 말리사 윌리엄스의 유족인 알프레도 윌리엄스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흑인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구역질이 난다”며 “다른 도시였다면 유죄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고 재판부를 비난했다. NYT는 판결이 나오자 현지에서 흑인들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이며 차량 통행을 막았다고 전했다. 현지 경찰은 시위에 참가한 흑인 수십명을 체포했다. 프랭크 G 잭슨 아이오와주 주지사는 이날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흑인의 반발 움직임에 미 법무부는 연방 차원의 재기소 여부를 검토키로 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