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북한의 3대 지도자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 런던 중심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열앨버트홀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70세 기념 콘서트를 이틀 연속 관람한 것이다. 동생 김정은은 단지 자신의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못했거나 자신의 존엄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최측근을 극형에 처하는 공포정치로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한때 지도자가 될 뻔했던 김정철의 런던 나들이는 그래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로열패밀리의 일상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기에 김정철의 런던 나들이는 북한읽기 2015 최신판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스위스 베른에 유학했던 김정철은 에릭 클랩튼의 열성팬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독일과 2011년 싱가포르에서의 클랩튼 연주회에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 북한 사람들 중에서 콘서트 관람 등 개인적 목적으로 해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김씨 패밀리 중 극소수이거나 최고 지도자의 특별 허가를 받은 자에 국한될 것이다.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더욱 폐쇄적인 고립노선을 걷고 있는 북한은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서방 국가 여행은 그만큼 위험하고 체제불안적 요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김정철의 런던 나들이는 절대 권력자의 친형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동시에 단순 해프닝으로 볼 수 없는 복잡한 배경이 있을 수 있다. 김정철은 아버지 김정일 생존시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과정에서 경쟁자로서 경합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스스로 양보하지는 않았지만 친부인 김정일의 결정에 따라 후계자 대상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권력 기반이 구축될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이복형제들 가운데 오직 고영희가 낳은 3남매만이 함께 스위스에 유학했기 때문에 형제간 우애도 있었을 것이다. 후계자에서 배제된 김정철이 2011년 싱가포르 여행에 여동생 김여정과 동행했던 것도 그 같은 형제관계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북한처럼 혈통에 의해 세습구조를 구축한 체제에서는 집권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경쟁자는 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습왕조에서는 후계자리를 놓고 형제간에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이 비일비재했고,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술책이 난무했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의 직계 혈통은 김정일과 김경희로 주장되고 있고, 3대 세습자인 김정은은 적통성에서 하자가 많고, 그만큼 경쟁자도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집권 3년 반 동안 70여명의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고 백두혈통의 유일한 적통자인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까지 처형한 것은 그런 연유에 기인한 것이다.
권력승계의 합법성을 백두혈통으로 명시할수록 현재 북한 권력 구조의 모순은 더 많은 모순을 양산하게 된다. 김정일이 김정철을 제치고 동생인 정은을 후계자로 택한 이유가 정은의 뛰어난 역량 때문이라고 알려졌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김정일의 실질적인 장남 김정남이 생존해 있고, 그의 아들이자 김정일의 친손자인 김한솔도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일성과 후처 김성애 사이에서 낳은 김평일도 또 그의 가족들도 건재하고 있다.
김정은의 세습 정당성의 근간이 백두혈통이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평양 로열패밀리의 고민과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지금의 평양에서 가장 위험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사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정은 다음으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김정철일 것이다. 그가 클랩튼이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작곡했다는 ‘하늘에서의 눈물’에 열광했다면 자신들로 인해 고통받는 인민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줄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과)
[한반도포커스-유호열] 평양의 자유로운 영혼, 김정철
입력 2015-05-25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