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면서 닮는 모양이다. 한국의 인구구조가 1990년대 일본과 매우 비슷할 뿐 아니라 노동공급, 투자, 저축, 경상수지, 주택가격 등 경제 전반에서도 유사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 일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의 지적이다.
20년 격차라고 하니 꼬박 30년 전 한 대기업의 해외파견 유학생 선발 최종면접 때가 생각난다. 당시 일본 대학원 입학통지를 받고 있던 터라 선발에 응모해 어렵게 그 자리까지 갔다. 5개국에 2명씩 총 10명을 선발해 5년간 꽤 많은 장학금을 지원하는 조건인 데다 최종면접자가 나라별로 3명밖에 남지 않았기에 꿈에 부풀어 있었다.
면접관 대부분은 저명한 교수님들이었는데 첫 질문부터 난처하게 했다. “일본은 한국을 몇 년이나 앞섰나?” 양국이 처한 상황이 달라 잘 모르겠지만 GNP 규모로는 이러저러하다고 답했다. 왜 그런 빤한 걸 묻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 이어지는 질문은 한술 더 떴다. “일본을 따라잡는 데 몇 년이나 걸리겠나?” 사실 나는 격차, 추월 등엔 관심도 없었고 학술적이지도 않다고 봤었다. 그까짓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대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그런 내용으로 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위기는 바로 싸늘해졌다. 그 다음 질문은 기억도 안 난다. 면접관들은 일본에 유학하는 학생으로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둥, 앞으로 한국은 일본을 꼭 추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둥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3명 중 1명의 탈락자는 나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저명한 면접관 교수님들의 인식에도 적잖이 실망했다.
이미 고인이 됐을지도 모를 그분들은 20년 차이를 두고 한·일 경제가 닮은꼴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아직도 격차가 20년이나 되냐며 안타까워할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격차가 아니라 닮은꼴의 내용이다. 인구구조가 20년 전 일본과 비슷하다는 것은 그로 인한 경제체질의 변화도 유사하게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구구조는 단기간에 바뀔 수 없고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 ‘잃어버린 20년’의 중요 원인이 일본의 인구고령화에 있고 이는 곧 ‘생산성 둔화-성장률 하락-장래 불안-소비 위축’으로 반복됐었다. 한국의 총인구증가율과 노인인구부양비율 추이는 20년 간격을 두고 일본을 그대로 쫓아가는 모습이다.
한국경제는 화려한 압축성장을 경험했지만 대략 2003년부터 세계경제 평균성장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잠재성장률이 추세적 하락세를 면치 못하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20년 전 일본이 우물쭈물하며 대응에 실패하는 바람에 인구구조 변화의 부정적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장기불황에 빠진 사실을 소홀히 봐서는 안 된다.
한·일 양국 경제가 20년의 시차를 두고 닮은꼴이라고 할 때 유념해야 할 것은 반면교사로서의 일본이다. 일본이 90년대 하려고 했다가 못한 정책, 추진했지만 제대로 이루지 못해 되레 역효과를 낳았던 정책 등에 대한 실패사례 연구가 필요하다.
일본은 국가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데 이는 90년대 침체가 일시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무분별하게 폈던 재정정책 탓이 크다. 그 외에도 6대 구조개혁 등 계획만 무성했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숱한 정책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지지 않으려면 닮은꼴에서 벗어나는 구조개혁이 절실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딴전만 피운다. 청맹과니가 아닌 바에야 어찌 그리 무심한지. 시간도 별로 없는데. 20년 전 실패한 일본이 있어 다행이었노라고 말할 때가 꼭 왔으면 좋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한국경제 20년 전 일본과 닮았으나
입력 2015-05-25 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