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로변경 ‘무죄’, 쌍둥이 아들 생일에 ‘자유’… ‘땅콩 회항’ 조현아 執猶 선고 안팎

입력 2015-05-23 02:35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다 취재진의 촬영을 피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구속된 지 143일 만에 풀려났다. 연합뉴스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30분 만에 법원 지하주차장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법정에서 입었던 녹색 수의(囚衣)를 검은색 블라우스와 정장 바지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100명이 넘는 내외신 취재진이 몰려들자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느냐” 등의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대기하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을 타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조 전 부사장의 항소심 선고는 22일 오전 10시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150석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그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선고를 들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쌍둥이 아들의 생일이었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항로변경 혐의를 무죄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주로 항공기 납치와 같은 위험한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항로변경죄가 마련된 점을 강조했다. 비교적 위험성이 낮은 항공기 계류장 내 이동까지 ‘항로변경’으로 규정해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법률을 피고인에게 불리하도록 지나치게 확장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률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대원칙이다. ‘땅콩 회항’ 사건은 항로변경죄에 ‘항로’의 정의가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1심부터 치열한 법정 논쟁을 벌였었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항공보안법상 폭행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선고 말미에 “형사법의 원칙은 범죄행위자보다 범죄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더 중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법언(法諺)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조 전 부사장의 범행은 다른 항공기 내 폭행 사건과 비교하면 오히려 경미한 편”이라며 “엄중한 사회적 비난을 앞으로도 인식하며 살아야 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이 끝나자 조 전 부사장은 구속 피고인 통로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방청석에서 “반성은 했느냐”는 외침도 들렸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상고 여부에 대해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했다. 대한항공 측은 “이미 회사를 떠나신 분”이라며 말을 아꼈고 공식 입장도 없었다.

조 전 부사장은 풀려났지만 각종 민사상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항로변경 무죄에 대해 상고할 경우 대법원 최종 판단을 받아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상고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조 전 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를 서비스했던 승무원 김도희씨는 지난 3월 미국 뉴욕주 최고법원에 조 전 부사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김씨는 앞서 항소심 재판부에 “조 전 부사장 일가가 두려워 회사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박창진 사무장도 미국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5일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항공기 승무원의 서비스를 문제 삼고 사무장에게 폭언·폭행을 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지난 2월 “돈과 지위로 인간의 자존심을 무릎 꿇린 사건”이라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었다.

나성원 신훈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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