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아시아 국가들을 겨냥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시 주석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설립자본금을 2배로 증액하기로 하자 곧바로 아베 총리는 엔화대출을 늘리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자본금을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연내 출범할 AIIB 설립을 계기로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질 것을 우려한 일본이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한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AIIB와 일본의 지분이 큰 ADB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창립멤버다.
◇덩치 키우는 AIIB, 중국 입김 갈수록 커져=57개 AIIB 창립회원국 수석교섭관들은 싱가포르에서 비공개 회의를 갖고 설립자본금을 당초 5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약 109조원)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2일 보도했다. AIIB 참가국이 급증하면서 자본금을 늘려 경영을 안정시키자는 중국의 제안에 이같이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지분은 애초 50% 수준으로 검토됐으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이라는 각국의 우려가 반영돼 25%를 넘는 선에서 조율 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출자 비율 변경 등 중요 의제에 관해서는 의결권 7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중국의 거부권 조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IIB는 설립 전부터 자본금을 늘리는 등 덩치를 키우고 있어 향후 수년 내 전체 자본금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럴 경우 일본이 주도하는 ADB의 자본금 규모를 뛰어넘게 된다.
◇견제 나선 아베, 엔화대출 늘리고 ADB 자본금 확충=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의 아시아지역 인프라 투자에 향후 5년간 1100억 달러(약 12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예산의 30%를 늘린 것이며 AIIB의 증액된 자본금보다 많은 금액이다. 이는 일본 정부의 AIIB 대항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아베 총리는 21일 도쿄에서 니혼게이자이신문 주최로 열린 ‘아시아의 미래’ 포럼 만찬에 참석해 가진 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 예산 1100억 달러 중 절반은 일본 원조 기구를 통해, 나머지 절반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ADB를 통해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또 ADB의 자본금도 늘려 대출 능력을 50% 키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가 날로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일본의 역내 입지와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맞대응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AIIB 견제는 일본과 ADB뿐 아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계은행도 인도네시아의 기본 인프라 구축에 향후 3∼4년간 1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는 등 아시아 투자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아시아의 성장잠재력이 높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지만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돈 풀기 경쟁에도 불구하고 투자 공급이 아시아 전체의 인프라 수요에 훨씬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ADB는 향후 10년간 아시아의 인프라 투자 수요가 8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석운 기자 swchun@kmib.co.kr
“AIIB 힘 빼라”… 아베 1100억 달러 베팅
입력 2015-05-23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