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전용기, 뭐가 다를까] VIP, 세계 어느 상공에 있든 핫라인 연결된 ‘공중 지휘소’

입력 2015-05-23 03:08 수정 2015-05-23 18:20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는 보잉사의 B747-400 기종을 기반으로 하지만 내부 구조는 민간 항공기와 확연한 차이점을 갖는다. 무엇보다 대통령 전용공간이 우선적으로 배치되고, 첨단 통신장비들이 대거 투입된다. 전용기 승무원으로 민간 항공사의 승무원과 공군 소속의 여군이 함께 배치되는 것도 특이점이다.



대통령 전용공간에 회의실, 국가통신지휘망도

전용기 내부는 복층 구조다. 기내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등이 포함된 대통령 전용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공간은 최고 수준의 보안과 경호가 이뤄지는 곳이다. 기내에는 최대 30명 이상이 동시에 회의할 수 있는 회의실도 있다. 다만 세부적인 배치 및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방문이 이뤄졌던 2013년 5월 전용기 내 회의 모습을 외부에 공개한 적이 있다. 전용기는 또 비상사태 발생 시 청와대, 군과 직접 연결이 가능한 국가지휘통신망 등을 갖추고 있다.

전용기 내에는 또 청와대 선임행정관급 이상 비공식 수행원들이 앉는 공간(비즈니스클래스), 그 뒤로 경호원과 기자, 수행원들의 공간(이코노미클래스)이 있다. 2층에는 각 부처 장관, 청와대 수석비서관급의 공식 수행원들이 앉는다. B747-400 기종은 좌석 수가 기본적으로 416석이지만 전용기에는 200여석만 배치됐다. 일반 기종보다는 좌석의 앞뒤 간격이 넓다. 하지만 장거리를 중간 기착 없이 비행하는 전용기 운항 특성상 불편함을 호소하는 기자들, 수행원들도 상당하다. 지난달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 귀국길은 24시간이 넘는 논스톱 비행(중간급유 시간 포함)이었다. 24시간 넘게 꼬박 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2010년 전용기 도입 초기에는 기자들 탑승공간에 기자회견이 가능하도록 작은 연설대가 있었지만, 박근혜정부에선 없어졌다.



대통령 간담회와 대변인 약식 브리핑도

전용기 내에선 대통령의 간담회도 이따금 이뤄진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해외순방을 동행 취재한 기자들을 대상으로 기내 간담회를 두 차례 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마치고 귀국할 때와 지난 3월 중동 4개국 순방 귀국편에서다. 간담회는 가끔 있지만, 출국 및 귀국길 대통령의 기내 인사는 빠짐없이 이뤄지는 편이다. 이때만큼은 박 대통령도 기자들을 상대로 농담을 건네면서 편한 시간을 보낸다. 기자들에겐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스킨십’을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중남미 4개국 순방에선 박 대통령의 건강 악화로 간담회는 물론 간단한 기내 인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또 언제나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전용기 내에서의 브리핑도 이뤄진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당시 기내에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재가와 관련한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및 공군 소속 베테랑 승무원 배치

대통령 전용기에는 승무원 15명가량이 탑승한다. 항공사 소속 승무원들은 해당 항공사에서 엄격한 선발절차와 신원조회, 보안유지 교육 등을 거친 베테랑들이다. 공군에서 선발된 여군(부사관급)들도 승무원으로 배치된다. 이들은 일반적인 승무원처럼 기내에서 수행원과 기자들의 안내, 서비스 등을 맡는다. 그러나 일단 해외에 도착하면 보안을 이유로 외부 접촉이 금지된다. 군인이라는 특성상 기내 서비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서비스 수준이 훈련을 통해 항공사 승무원 수준으로까지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 항공기 조종사는 기장, 부기장으로 나뉘지만 전용기는 기장 2명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인원도 탑승한다.



극도 보안 속 공군기지 계류 및 정비

대통령 전용기의 관리 주체는 공군이다. 공군이 정비감독 업무를 맡고, 대한항공이 정비를 담당한다. 청와대 경호실은 전용기 중 보안에 관련된 사항을 맡는다. 전용기가 계류하는 곳은 24시간 보안 및 경호가 이뤄지는 경기도 성남의 공군기지다. 이 기지에는 대한항공 정비팀이 별도로 상주한다. 베테랑 정비사들이 거의 매일 점검을 한다고 한다. 전용기 정밀점검은 민간 항공기의 중정비와 군용기 정비·개조·조립 등을 담당하는 곳에서 별도로 이뤄진다.

1980∼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대통령 특별기(전세기)가 운항할 때에는 해당 항공사의 회장이 항상 수행원으로 함께 탑승했다. 국가 정상이 탑승한 항공기 운항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현재는 사라졌다.



전용기 기체이상 회항, 항로 정보 노출도

극도의 보안 유지가 이뤄지는 전용기 특성상 세부적인 내부 구조와 항로는 철저한 비공개 원칙이 지켜진다. 국가원수가 탑승하는 만큼 안전 확보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치밀한 사전정비 역시 필수적이다.

그러나 때로 아찔한 순간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대통령 전용기 회항 사태다. 그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수행원, 기자들을 태우고 아랍에미리트로 향하던 전용기는 서울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40분 만에 기체 이상으로 인천국제공항으로 회항했다. 이륙 30여분 만에 기체 아랫부분에서 소음, 진동이 감지돼 회항한 것이다. 대통령 전용기(전세기 포함)가 기체 이상으로 회항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회항 과정에서 전용기에 실린 항공유 6만ℓ를 서해상에서 버리기도 했다. 전용기는 인천공항에서 점검을 마친 후 다시 이륙했다. 회항 원인은 기체의 에어커버를 고정하는 나사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아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에는 미국 인터넷 사이트에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의 항로가 노출된 적도 있었다. 그해 11월 이 전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 당시 전용기 이동 경로가 항공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에 전부 공개된 것이다. 해당 사이트는 미국 연방항공국(FAA)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전 세계 비행 현황을 공개해 왔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 전용기의 고도, 속도, 위치정보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보안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제기됐음은 물론이다.

항공기들은 위성으로 현 위치를 확인하는 위치탐지시스템(ADS-B)을 기본으로 지상의 방향유도장비(VOR)와 거리측정장비(DME)의 신호를 받으며 운항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는 정부가 사전에 차단 조치를 하지 않고 운항해 관련 정보가 그대로 노출됐다. 청와대는 당시 이를 인지하고 즉시 기술적인 보안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