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에 근무하는 올가 탈랄라이(40·여)는 지난여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스톡홀름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녀가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대통령이 뭘 하든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아요. 가까운 미래에 러시아가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모든 러시아 사람이 ‘푸틴의 러시아’에 염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이리나 포미나(35·여)는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보는 눈을 가졌다. 그리고 내 신념을 끊임없이 변호해야 하는 곳으로 떠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고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른 러시아 중산층의 양극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방 세계와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렇게 그렸다.
현지 여론조사업체 레바다 센터의 레프 구드코프 대표는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중산층을 갈라놨다”면서 “러시아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계층이라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고 분석했다.
‘탈러시아’ 물결을 보여주는 지표는 다양하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은 지난해 1∼8월 러시아를 떠난 인구가 20만3560여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의 인구통계학 전문가 미카엘 데니센코는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이동한 인구가 2013년 4000명이었으나 지난해엔 500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한 컨설팅회사 관계자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상담받는 러시아 사람이 지난 한 해 동안 60명이었는데 올해는 한 달에 최대 30명 수준”이라고 전했다.
서방의 제재로 지난해부터 악화된 경제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는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당국이 이날 자국의 인터넷 블로그 규제법을 위반할 경우 구글과 트위터, 페이스북 서비스를 폐쇄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서면서 표현의 자유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지정학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이날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권 6개국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EU·동부파트너십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틀간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EU와 동부파트너 국가 간 경제협력 방안과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에서 벗어나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푸틴 싫어!”… 러 중산층이 떠난다
입력 2015-05-23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