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塞翁之馬).”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국무총리 후보 지명 소식에 한 검찰 간부는 이렇게 촌평했다. 황 후보자의 28년 검사 생활은 굴곡이 많았다. ‘미스터 국보법(국가보안법)’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공안검사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공안 외길’ 경력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검찰인사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시게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경기고 학생회장 출신인 황 후보자는 성균관대 법대를 나와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검 공안 3·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 공안 분야의 핵심보직을 거쳤다. 공안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보법 해설’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도 사석에서 “주특기는 공안”이라고 말한다. 검사 초년이던 1980년대 대한항공기(KAL) 폭파범 김현희를 조사했고, ‘임수경·문규현 밀입북 사건’ 수사에도 참여했다. 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특검 때는 특별수사관으로 파견됐다. 공안2부장 재직 때인 2002년 단병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했는데, 7년 뒤 창원지검장 시절 신임검사가 된 단 위원장의 딸과 같은 청에서 조우한 경험도 있다.
2005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으면서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을 수사해 전직 국정원장인 임동원·신건씨를 구속했다. 같은 해 ‘삼성 X파일 사건’ 때는 이를 보도한 기자들을 기소한 반면 X파일에서 거론된 ‘떡값 검사’들과 삼성 경영진은 무혐의 처분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같은 해 있었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보법 위반 수사는 황 후보자 검사생활의 변곡점이 됐다. 그는 강 교수 구속수사를 주장하며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대립했다. 천 장관은 결국 ‘불구속 수사’ 지휘권을 발동했고 이 일로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황 후보자는 2006년과 2007년 인사 때 검사장 승진에서 잇따라 낙마하며 ‘공안 홀대론’의 중심에 섰다. 사법연수원 동기들 중 선두권으로 꼽히던 그가 승진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 강 교수 사건 처리 과정에서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황 후보자도 당시 ‘나가라는 뜻’으로 알고 사표를 내려 했으나 지인들이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1년 한 강연에서 “(노무현정부 때) 옳지 못한 인사라는 것을 제가 당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황 후보자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2008년 3월에야 ‘막차’를 타고 검사장이 됐다. 이후 창원지검장, 대구·부산고검장을 거쳐 검찰총장 후보군에 들기도 했지만, 연수원 동기인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오르자 2011년 8월 옷을 벗었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던 황 후보자는 박근혜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발탁되면서 1년4개월 만에 공직에 복귀했다. 이후 2년3개월간 장관을 맡아 현 정부의 ‘방패막이’이자 ‘소방수’ 역할을 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불구속 수사 의견을 관철시켰고,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을 진두지휘해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을 이끌어냈다. 황 후보자는 지난달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공안부서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훼손되는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며 통진당 해산심판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황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부정부패 사정 등 정국을 뒤흔든 대형 사건 때마다 ‘법과 원칙’을 내세워 정부 측 논리를 대변했다. 그러다보니 야당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고, 두 차례나 해임건의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순리대로 될 것”이라고 언론에 말하면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이런 단호함과 뚝심이 그를 ‘퀸스맨’으로 낙점되게 했다는 평이다.
황 후보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열 살 때 누나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사법연수원생이던 81∼83년 야간에 수도침례신학교를 다녀 전도사 자격도 얻었다. 장관이 되기 전까지 서울 양천구 성일교회에서 성경학교 교사로도 봉사했다. 황 후보자는 2007년 국민일보의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코너에 쓴 글에서 “돌이켜 보면 도저히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가 계셨다”고 말했다. 부인 최지영씨는 98년 성가앨범 ‘위대한 유산’을 냈으며, 현재 나사렛대 상담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곧 검사 사위를 본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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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22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