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난 아이작 더스트(49)는 23년 전 한국 여인과 결혼해 한국의 ‘백년손님’이 됐다. UC 버클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동아시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신장 190㎝의 아이작은 할리우드 배우 짐 캐리를 연상시키는 기상천외한 표정과 유머감각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인기 영어강사다. 그는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는 등 다방면에서 여러 색깔을 지닌 ‘만능 짬뽕맨’으로 통한다.
한국인 외할머니는 인생의 영원한 스승
영문학 박사인 유대인 아버지에게 이끌려 아이작은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공연, 클래식 음악, 박물관을 제 집 드나들 듯 찾았다. 그 경험이 지금의 그를 재미와 학습을 겸비한 에듀테인먼트의 선구자로 이끌었다.
그는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보디랭귀지 세 가지 언어에 능통하다. 영어를 ‘웃기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 딱딱한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공부를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격언에 비유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하루에 한 단어라도 꾸준히 하면 영어박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작은 버클리대 3학년 때 연세어학당으로 유학을 오면서 한국어와 인연을 맺고 ‘극동아시아’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역사, 일본 사회학, 중국 철학 등 아시아 전반에 대해 두루 섭렵했다. 유대교인 부친이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이작은 뱃속에서부터 크리스천이 됐다. 한국과의 인연은 매우 각별하다. “일곱 살 때였지요. 친어머니와 이혼한 아버님이 어느 날 갈색 눈에 새카만 머리카락을 지닌 분을 집으로 데리고 오셨어요.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금방 알아차렸어요. 새어머니와 잘 지내야 한다는 것과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제가 사실은 눈치가 9단이거든요.”
‘여장부 스타일’인 한국인 새엄마는 매우 엄격했다. 대충과 적당히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화장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새어머니는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 정착한 분이라 영어 실력이 유창했어요. 그런데 외할머니는 짧은 영어 몇 마디도 못하셨어요. 말이 안 통했지만 참 좋으신 분이었어요.”
한국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오로지 외할머니와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침에 직장을 나가고 외할머니와 둘만 남는 시간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배가 아프면 배를 움켜잡고 배가 고프면 먹는 시늉을 하고, 졸리면 눈을 비비는 것으로 의사전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린 손자를 바라보며 한 걱정을 하셨다. 철없는 손자였지만 아이작은 외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외할머니는 허리가 굽어서 힘드실 텐데 손수 음식을 만들어주시고 하루 종일 부지런히 일을 하셨어요. 저에게 주시는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몰라요. 그래서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외할머니한테 듬뿍 받은 사랑이 결국 그를 한국 땅으로 인도했다. 1987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어에 눈을 뜰쯤인 1991년 부모님 주변의어느 목사님 중매로 ‘능금 아가씨’(대구 출신)를 아내로 맞았다.
나의 세 번째 한국여인은 ‘현모양처’
“제 아내는 한마디로 현모양처입니다. 첫눈에 반해 결혼했어요. 장모님을 닮아 복스러운 얼굴, 자신보다 남편을 챙기는 성품에 홀딱 반했지 뭡니까. 만난 지 몇 달도 안 돼 결혼에 골인하고 미국과 서울을 오가며 아이를 낳고 기르다보니 2남 2녀를 둔 다둥이 아빠가 됐더라고요(하하).”
네 명의 한국 여인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아이작은 2006년 학수고대하던 영주권을 받았다. 안정적인 생활과 자녀교육을 위해 한국에 정착하기로 맘먹고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영어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일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특유의 몸짓과 발짓 등으로 각종 익살스러운 표정을 동원한 영어 공부방식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그는 모국어가 아닌 환경에서 외국어를 배우려면 즐겁게 놀이하듯 익히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작은 영어공부에도 ‘균형원리’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영어의 소통 기능을 무시하고 입시에 매달린 학습을 하면 반쪽 영어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의사소통 영어와 입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결은 바로 밸런스입니다. 균형을 잘 잡아야죠.”
5월이면 ‘집으로’ 다시 보며 눈시울
아이작은 해마다 5월이면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이정향 감독)를 다시 본다고 했다. 외진 산골에서 홀로 사는 외할머니와 그 할머니에게 맡겨진 손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담담한 생활을 묘사한 영화가 꼭 자신과 외할머니 얘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보여주는 행복바이러스는 모두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했다.
항상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은 대하는 아이작에게 사람들은 ‘해피 아이작’이라고 부른다. 그는 재미있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다. 중고차 시장에서 11년 전 구입한 그의 ‘보물 똥차’(2000년식 현대 트라제 9인승)는 33만㎞를 달렸지만 아직도 쌩쌩하다. 차 안에는 없는 게 없다. 색깔별 와이셔츠와 컬러풀한 안경 수십 개, 손거울과 색조 화장품이 든 가방에서부터 영어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들로 가득하다.
아이작은 생김새만 미국인이지 속은 토종이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 등골이 휘도록 피땀을 흘리는 한국 부모들의 마음을 아주 잘 안다. 특히 자식을 다른 나라로 유학을 보낸 학부모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했다. 세상살이가 힘들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조직사회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을 섬기는 일과 조그마한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생활을 권한다. 아파트 단지 내 노인정을 자주 찾아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함박웃음을 선물하는 등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돕는 일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늘 기도하는 것이 아이작의 노하우다.
그는 자신의 신앙수준이 절대로 높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했다. 크리스천이라면 언행일치(言行一致)는 기본이고 ‘신행일치’(信行一致)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수님의 마음’ 같기만 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신앙은 안녕하신가요? 양심에 손을 얹고 예수님께 여쭙고 귀를 쫑긋 세워보세요.”
그는 여러 가지 역할을 균형감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글링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러 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돌리고 있는 저글링처럼 가족들이 힘들어하면 그것을 끌어안느라 다른 공을 잡을 수 없어요. 나만의 시간이 없으면 그것을 돌릴 힘을 잃게 되지요. 혼자만의 시간도 충전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저는 혼자일 때 수시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돌리는 저글링이 엉클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크리스천이다. 행단보도를 지나다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신호등이 끊겨 진퇴양난에 빠진 사람을 부축해 무사히 길을 건너도록 도와준다.
약속은 생명이다. 녹화방송이나 중요한 약속은 1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 준비하는 편이다. 그의 사전에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은 없다. 길이 막히는 시간과 돌발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철저히 챙긴다.
요즘 그는 경기도 용인 구갈의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모시고 살던 장인어른이 파킨스병으로 투병하다가 4년 전에 돌아가신 뒤 홀로 된 77세 토끼띠 장모님과 단둘이 산다. 같이 산 지 20여년이 다 되다보니 이젠, 아침상 차릴 때도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둘 사이는 모자 사이 이상이란다. “장모님이 방귀를 뀌면 ‘장모님 부르셨어요∼’라고 웃으면 달려가지요. 반대로 제가 실례를 하면 ‘장모님 여기 개구리 한 마리 밟았으니 조심하세요’라고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그러면 장모님은 ‘냄새가 지독하니 저리로 치우게’라고 손사래를 치시며 장단을 맞추기도 합니다.”
아이작은 부인과 자녀(2남 2녀)를 외국으로 보낸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자칫하면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거니와 국내 공교육을 불신한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입시위주의 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뉴욕대 3학년인 첫째는 95% 장학금을 받고 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둘째 딸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년 동안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날 계획이다. 셋째 딸은 미국 수능격인 SAT를 준비하고 있으며 막내아들은 이제 중학교 2학년이다.
코믹한 ‘백년손님’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미역국이다. 하루라도 들깨가루를 넣은 미역국을 먹지 않으면 혓바늘이 돋는다는 아이작은 토종 백년손님이다. 아파트 앞 조그마한 화단 공터엔 장모와 함께 심은 상추가 파릇파릇, 고추가 무럭무럭 자란다. 김치를 많이 하면 장모와 함께 노인정으로 가 나눠준다. 그래서 아이작의 냉장고엔 음식이나 반찬들이 쌓일 날이 없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처럼 아이작은 사랑스러운 백년손님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장모와 방귀를 트고 지낸 지 오래다. 말이 필요 없다. 냉장고를 열고 닫고, 밥솥을 열고 밥 떠놓고, 국이 담긴 냄비 뚜껑을 열어 국 퍼놓고, 달그락거리며 수저를 놓는다. 아침, 저녁으로 두 사람은 무언극을 하듯, 가볍게 춤을 추듯 밥상을 차린다. “뿌우∼웅” 장모님이 말하면 쉰 고개를 넘는 백년손님은 일곱 살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네, 엄마 잘 먹을게요∼”라고 소리치면서 달려가 맛있게 식사를 한다고 했다.
아이작은
현재 EBS 라디오에서 김태연씨와 초급 영어회화(Easy English)를 진행하고 있으며 인천 연수구 송도문화로 한국뉴욕주립대학교(SUNY KOREA)에서 아이작소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마풀’(마법처럼 풀리는 영어공부), 영어회화 & 수능영어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한국카이스㈜ 대외협력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가족행전] 한 지붕 장모·사위 불편하지 않냐고? 방귀 트고 살아요… 가족이 된 백년손님 아이작 더스트
입력 2015-05-23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