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여성의 욕망 ‘힐링 무대’를 만나다… 뮤지컬 ‘쿠거’·박칼린의 미스터쇼

입력 2015-05-22 02:41
중년 여성의 성과 사랑을 다룬 뮤지컬 ‘쿠거’의 한 장면. 쇼플레이 제공
근육질 남자 배우들의 춤을 보여주는 ‘미스터쇼’의 한 장면. 두 작품은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다뤄 여성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받고 있다. KCMI 제공
인류 역사에서 남성은 늘 욕망의 주체였던 것에 비해 여성은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돼 왔다.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죄악시됐을 정도다. 하지만 여성도 인간인 이상 욕망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오랫동안 남존여비에 물들었던 한국사회도 점차 개방화되면서 성적 담론에서 여성을 주체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 팬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연계에서도 여성의 욕망을 일깨우고 충족시켜주는 작품들이 나와 주목된다. 뮤지컬 ‘쿠거’와 박칼린의 ‘미스터쇼’가 대표적이다.

7월 26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쿠거’는 뮤지컬판 ‘섹스 앤드 더 시티’다. 중년여성과 연하남과의 사랑을 그렸으며 2012년 미국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3년간 인기리에 공연됐다. 제목인 쿠거는 원래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과 동물을 뜻하는 단어로, 젊은 남성을 사귀는 나이 든 여성을 비하하는 뜻이 있다.

작품은 쿠거라는 이름의 바를 운영하는 메리-마리, 출세 지향적인 방송국 프로듀서 클래리티, 가족만을 위해서 살다가 이혼한 릴리 등 세 여자가 자신의 삶과 사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공연을 보다보면 어느새 ‘쿠거’는 젊은 남성의 사랑을 받을 만한 멋진 여성이란 긍정적인 뜻으로 바뀌게 된다.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30대 이상 예매율이 78%로 압도적이다. 특히 40∼50대 중년여성 관객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중년여성의 마음을 공감하고 대변하는 작품으로 입소문이 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미스터쇼’도 29일부터 7월 26일까지 롯데카드아트센터에서 다시 공연된다. 작품은 키 185㎝ 이상에 근육질의 젊은 남자 배우 8명이 ‘섹시함’을 주제로 관능적인 춤과 노래를 선사한다. 뮤지컬계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박칼린이 직접 작품의 구성과 연출을 맡았다.

오직 여성들만 관람할 수 있는 이 공연은 지난해 3월 초연 이후 연일 매진행진 속에서 1년 만에 관객 1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일각에서 “남성 모독” “남성의 상품화”라는 민감한 반응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일상적인 여성의 상품화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간혹 아찔한 순간이 있지만 사회자가 코믹하게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야하다기보다 유쾌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이런 정도의 쇼가 인기를 끈 것은 한국 여성들이 얼마나 욕망을 억제하며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지난 4월 일본 도쿄에 초청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일본 여성들 역시 한국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숨기고 있던 욕망을 드러내며 즐거워했다. 덕분에 오는 8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다시 투어 공연을 가질 예정이며 내년부터는 라이선스로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 대만에서도 이 작품을 초청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