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 빈라덴, 9·11테러 음모론 탐닉했다”… 美 국가정보국, 입수 문건 266점 공개

입력 2015-05-22 02:12
미국 국가정보국이 공개한 오사마 빈라덴(왼쪽 사진) 편지 일부. EPA연합뉴스

9·11테러를 주도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의 전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에 사살되기 몇 달 전 은신처를 옮기려 했음이 드러났다. 또 미국에 대한 테러에 광적으로 집착한 그는 국제정세나 미국의 전략, 음모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독서를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20일(현지시간) 2011년 5월 2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에 숨어 있던 빈라덴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 103건과 미국 정부자료를 포함한 각종 서적류 등 266점의 내용을 분석, 공개했다. 이들 자료는 빈라덴이 직계 가족이나 알카에다 지도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PDF 형태의 서적, 싱크탱크 보고서, 미 정부자료 등을 망라한다.

이들 자료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DNI가 ‘빈라덴의 서재’라고 이름 붙인, 은신처에서 발견된 책들의 목록이다. 미국의 석학 놈 촘스키가 저술한 미국의 패권전략을 분석한 ‘패권이냐 생존이냐’, 미국의 여론 조작을 다룬 ‘필요한 환상’ 등이 눈에 띈다.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 지난 5세기 동안 열강의 경제·군사력 성쇠를 다룬 ‘강대국의 흥망’,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전략을 기술한 ‘오바마의 전쟁’도 포함돼 있다.

특히 총 38권의 영어서적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음모이론과 관련된 서적으로 파악되는 등 그가 ‘음모이론’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미 정부가 9·11테러를 공모했다는 주장을 담은 ‘새로운 진주만, 부시 행정부와 9·11에 관한 혼란스러운 질문들’이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빈라덴은 뉴스위크, 타임, 포린폴리시 등의 언론 매체도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읽은 것으로 드러났다.

독서의 목적은 다양했으나 집요한 목적이 엿보인다는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그의 독서가 테러를 가하거나 대중을 선동하는 등 미국을 직간접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빈라덴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데 따른 좌절감을 피력하며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사살되기 6개월가량 전 ‘보호자’ 파키스탄인 2명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그는 “이곳(은신처)을 떠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장소를 찾는 데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썼다.

한 편지에는 그가 치과 치료를 받은 아내에게 미 중앙정보국(CIA) 등이 치료 과정에 탐지기를 잇몸에 심어 놓았을 수 있다며 치과 충전물질을 떼어내라고 한 일도 적혀 있다. 그가 미국의 추적에 편집증과 극도의 공포를 겪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4명의 부인과 20명의 자녀를 뒀던 빈라덴은 많은 자녀와 편지를 교환했는데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아빠로 묘사되고, 부인 중 한 명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에 빠진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알카에다에 들어가려면 작성해야 하는 신청서도 공개돼 눈길을 끈다. 지원서에 적힌 질문은 ‘취미가 무엇인가’ ‘여가를 어떻게 보내나’ ‘가장 좋아하는 책은 과학인가 문학인가’ ‘지하드의 땅에 도착하는 날은 언제인가’ 등 다양했다.

특히 ‘자살 공격을 수행하기를 원하는가’ ‘만약 순교자가 되면 우리는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가.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달라’도 포함돼 있었다. 지원자들의 충성도와 지하드(성전)에 대한 열정을 파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