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중년 여인이 왕진 상담을 신청해 카운슬러가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거의 말이 없는 그녀를 진단하기 위해 집을 구경시켜 달라고 하였는데, 바이올렛 화분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아마 바이올렛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텅 빈 마음을 채우려고 했을 것이다. 바이올렛은 아프리카산으로 번식력이 강해 자주 손이 가야 하는, 조금은 까다로운 식물이다.
카운슬러는 그녀에게 바이올렛을 더 많이 재배해 교회에서 아기가 출생할 때마다 선물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바이올렛을 분재해 신생아들에게는 물론 세례식, 약혼식, 결혼식, 아픈 사람에게도 선물했다. 그런지 6개월이 못 되어 온 마을에 바이올렛 꽃 소문이 났다. 그녀를 취재한 기자는 ‘바이올렛 꽃 여왕’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이 이야기는 밀튼 에릭슨의 사례로 최근 우울증 치료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20세기는 내담자의 우울증세를 경감시키기 위해 무의식을 분석하고 의식의 신념체계를 바꾸는 등의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내성(內省·introspection)의 시대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성의 치료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에 의하면 내성의 효과는 약물치료를 포함해 평균 65%이고, 플라시보 효과가 45∼55%이니 너그럽게 추정해도 20%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그는 이를 ‘65%의 장벽’이라고 부르며 심리치료와 약물의 숨기고 싶은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외성(外省·outrospection)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외성이란 자기 밖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자기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바이올렛 꽃을 나누어주는 일이다.
외성의 필요에 대하여 피터 싱어는 이렇게 말한다. “내담자들이 심리치료의 소파를 떨치고 일어나 가난한 방글라데시나 에디오피아, 아니면 가까운 곳에 사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이웃들에게 무작위 친절 행동을 한다면 자신의 문제에 신경을 덜 쓰고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외성이 내성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며, 그 결과 심리치료 효과도 탁월하다는 많은 연구 보고가 있다. 그중에서 대학생들에게 6주 동안 매일 무작위 친절 행동을 다섯 가지씩 실천하라고 했던 소냐 루보미스키 교수 팀의 연구가 가장 인상적이다. 여기서 말한 친절이란 베푸는 사람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면서 타인에게 이익이나 행복을 주는 행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헌혈을 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병문안을 가는 등의 활동을 말하는데, 결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6주 동안 통제 집단의 행복지수는 떨어진 반면 무작위 친절 행동을 실시한 집단의 행복지수는 올라갔다. 두 집단은 실험을 시작할 때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6주 후 무작위 친절 행동을 실시한 집단의 행복지수가 통제 집단에 비해 41.66%나 증가했다.
최근 시드니 대학의 앤서니 그랜트 교수는 내성과 함께 외성을 위한 무작위 친절 행동을 적용해 나타난 탁월한 심리치료 효과를 보고한 바 있다. 그는 호주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메릭빌이라는 마을에서 주부 우울증, 알코올 중독, 일 중독, 낮은 자존감, 우울과 공허감, 심한 감정기복, 불면증, 끝없는 근심걱정 등을 호소하는 8명에게 8주간 외성 중심의 집단 프로그램을 ABC TV에 방영하였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무료급식소에서 2시간 봉사활동을 하였는데 봉사활동 전후 타액 검사에서 우리를 감기 등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면역글로불린 항체가 35% 증가하는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지금 고맙게도 지구촌에는 외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애니메이션 동영상 ‘외성의 힘(The Power of Outrospection)을 50만명 이상이 시청하고 있다.
이미 성경은 외성의 가치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김종환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김종환 칼럼] 바이올렛 꽃 여왕
입력 2015-05-23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