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노래하는 ‘교회 삼촌’ 밤·낮 色다른 달란트

입력 2015-05-23 00:33
주창훈 집사는 지난 19일 밤 서울 강남구 팝캐스트 스튜디오에서 ‘씨씨엠공방’ 녹음 방송을 진행했다. 아래는 주 집사(가운데)가 찬양사역자 Jin(왼쪽)·전대현 전도사와 녹음하는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같은 날 낮에는 면 셔츠 차림으로 서울 구로구 반도체 부품 제조사에서 일했다. 주창훈 제공
‘씨씨엠공방’ 로고
이 ‘교회 삼촌’ 이상하다.

낮에는 서울 구로구 한 공장에서 기계 부품을 만들고, 밤에는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음악 방송을 녹음한다.

주창훈(42) 꿈이있는교회 집사는 반도체 부품 제조사 ‘미경정밀’에서 기술자로 일한다.

퇴근한 뒤에는 기독교현대음악(CCM) 전문 팟캐스트 ‘씨씨엠공방’ 운영자이자 진행자로 시간을 보낸다.

주 집사의 ‘이중생활’을 추적해봤다.

밤에는 PD·싱어송라이터

사방이 어두워진 지난 19일 오후 8시쯤 팝캐스트 전문 스튜디오 ‘자몽’을 찾았다. 세 남자가 녹음실을 차지하고 연신 희희낙락(喜喜樂樂)했다. 주 집사가 건장한 다른 진행자에게 안부를 물었다. “Jin(진)은 감기가 오래 낫질 않았죠?” 찬양 사역자 Jin(38·본명 김석호)과 전대현(40) 전도사가 차례대로 근황을 전하고 지난 주간 행사를 소개했다.

주 집사는 “뮤지컬 문준경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전 전도사는 10주년을 맞은 CCM 밴드 페이먼트 공연을 언급했다. “페이먼트 싱어가 제가 만든 노래 ‘좁은길’을 처음에 참 부르기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지금은 대표곡이 됐지만….” 염평안과 조찬미의 공연 소감도 나눴다. 주 집사가 이번 주 씨씨엠공방 주제를 꺼낸다. “‘CCM은 위험한 음악인가’입니다. 주제가 무거워 다운로드 횟수가 떨어지겠는데요.”

Jin이 “그럼 우린 위험한 사람들입니까?”라고 묻자 웃음이 터진다. 서로를 번갈아 본다. “뭐 제 외모가 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셋은 CCM이 검증되지 않았다거나 감정만을 강조한다거나 깊이가 떨어진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다. 진지하면서도 깊은 대화가 오간다. 주 집사는 “음악은 취향이다. 주관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차이를 인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 집사는 2주에 한 번꼴로 스튜디오에 온다. 직장에서 약 1시간 거리다. 다른 진행자 Jin과 전 전도사는 그가 기획한 CCM 콘서트에서 만난 이들이다. “제가 CCM을 만들고 부르다보니 CCM 사역자들이 설 무대가 거의 없고 CCM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도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역자들에게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에서 팝캐스트를 시작했어요.”

주 집사는 씨씨엠공방 기획자이자 프로듀서(PD)다. 2시간가량 녹음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 편집을 한다. “아내랑 인사하고, 딸 재우고 편집해요. 6∼7시간 걸리는 것 같아요. 1회 녹음 분량이 씨씨엠공방 2회분이에요.” 주 집사는 스튜디오 대여료와 팝캐스트 서버 사용료 월 20만∼25만원을 개인적으로 부담한다. 회사원인 그가 팝캐스트 운영을 결심한 데는 출석교회 담임목사의 영향도 있었다.

“제가 2000년부터 이롬생식 창업자인 황성주 박사님이 담임하는 꿈이있는교회에서 찬양팀을 인도했어요. 황 박사님은 의사, 사업가, 교육자, 선교사, 목사로서 1인 5역을 하세요. 황 목사님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생업과 사역의 병행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2013년 주창훈 1집 ‘JESUS All I want to say’를 냈고, 지난해 김샛별·김현직과 함께 ‘scent’를 발매했다.

낮에는 반도체 부품 기술자

지난 13일 수요일 점심시간, 주 집사가 근무하는 회사 인근을 찾았다. 회사원이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이용해야 했다. “제가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어요. 엉뚱하죠? 음악은 사촌 중에 하는 사람이 많아서 포기했고 그 다음엔 신학을 고려했어요. 근데 사회과학을 먼저 공부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기획 천재’ 기질이 있었다. “피아노는 유치원 때부터 배웠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한 마리 새가 되리 높이높이 날리’라는 가사의 노래를 처음 작사·작곡했어요. (웃음) 고교 1학년 때는 제가 작곡한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복사해서 2000원씩 받고 친구들한테 팔았어요.” 1990년 고교 2학년 때 청소년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출전, 박종호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불러 대상을 받았다.

대학 시절 MBC 주최 강변가요제에 출전하기도 했다. 2000년 일반 가요 앨범을 냈지만 빚만 졌다. “빚을 겨우 갚고 닥치는 대로 작사와 편곡을 했어요.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 분야가 워낙 불안정하니까요. 기술을 배워야겠더라고요. 선교 단체에서 3년 정도 일하다 2008년 지금 회사에 입사했어요. 배우면서 일했어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2010년 손가락을 다쳤다. “부품 만드는 기계 앞에서 작업하다가 잘못 손을 넣어 오른손 검지의 인대가 끊어졌죠.”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그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시면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를 하겠습니다.” 다행히 주 집사는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을 수 있게 됐다.

그때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만든 노랫말이 2013년 첫 CCM 음반에 담긴 것들이다. “CCM 사역자들이 온갖 고생을 해 음반을 내고 나면 ‘해냈다’ 싶지만 더 큰 절망이 기다립니다. 노래를 부를 곳이 없기 때문이죠.” 자기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신인 사역자들이 노래하는 아이엠콘서트를 처음 기획했고 지난달 초 씨씨엠공방을 선보였다. “매월 평균 100장의 CCM 앨범이 나와요. 3분의 1은 정규이고 나머진 싱글이에요. 이 사역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 제가 좋아하는 CCM을 부르고, 나누고, 얘기할 수 있어 감사해요.”

그는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틈을 내 녹음분을 듣고, 방송안을 구상한다. 사역을 배려하는 미경정밀 사장 박승현 장로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매주 토요일도 출근한다. 참 열심인 ‘교회 삼촌’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