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23일] 행복한 동행을 위한 발자국 소리

입력 2015-05-23 00:41

찬송 :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458장 (통 51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2장 13절


말씀 :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무엇보다 시인의 “아무려면 큰 강(江)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는 대목에서는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교제하며 산다는 것이 곧 위로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심령이 편하지 못함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는 전도의 문이 환히 열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그런데도 그는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왜요?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어쩌면 바울에게 디도는 시인이 노래했던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같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통 가운데 있는 교회를 위로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골 2:2, 4:8). 바울은 먼저 자신이 빌레몬의 친절로 위로를 받았고(몬 7), 데살로니가 교회에 관한 기쁜 소식을 통해서도 위로를 받았습니다(살전 3:7). 한마디로 말하면 그런 바울에게도 때로는 위로가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영적 거장들에게도 위로는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전 4:9∼12)

발터 벤야민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밤중에 길을 걸을 때 중요한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곁에서 걷는 친구의 발소리다.” 나에게도 함께 행복한 동행을 해 줄 친구가 있나요?



기도 : 하나님 아버지,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웃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주님의 자녀인 것을 압니다. 누구에게나 행복한 동행의 발자국 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