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이른 아침부터 공장 정문에는 수십 명의 여인들이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오늘이 직원 뽑는 날인가 생각하며 공장 안으로 들어간 나는 적잖은 규모의 시설에서 수백만 서아프리카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는 회사의 막중한 임무를 볼 수 있었다.
“저 여인들은 매일 저렇게 나와 있어요. 언제라도 일을 할 수 있게요. 일을 그만두려는 사람과 하려는 사람이 날마다 생기니까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저렇게 마냥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아미나 회사는 1985년 토고 수도 로메에 한국인이 처음 정착한 이래 녹록지 않은 현지 적응을 하며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외곽 수출자유공단에 있는 공장에서 가발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고 있는 현지 대기업이다. 가나에서 한인교회 목사님을 통해 미리 연락된 이대형 대표를 만나 토고에서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모든 여행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매순간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토고는 2006년 월드컵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것뿐이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미나 직원들은 말 그대로 직장 선교를 실천하고 있었다. 정부와 협력해 회사의 이윤을 가지고 가난한 지역민들 복지에 힘 쏟는 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의무다. 주일에는 소박하지만 몇 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선교사와 현지 교회를 연계해 복음 선교를 함은 회사의 가치 있는 목적을 보여준다.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자주 경험하는 일이 있다. 어느 곳이든 아이들을 만나면 녀석들은 내 머리를 만지고 쓰다듬으며 경탄하는 것이었다. 생머리가 자라지 않는 유전 탓에 덥수룩한 내 머리가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욕망의 반영일까?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의 미용을 위한 맞춤 가발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부자는 부자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각각의 형편에 맞는 가발을 착용해 헤어 콤플렉스를 줄이고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래서 아미나 광고는 특히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인기 모델을 섭외해 촬영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높지 않거니와 직장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아미나에서 얻는 수입은 가계에 적잖은 보탬이 되기에 특히 여자들이 일하고 싶어 한다. 회사 형편상 서류를 내는 족족 고용을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굴지는 않는다. 때가 되면 순서대로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래 살아남기 위해 오직 경쟁과 성장만을 가치로 내세우며 기업 윤리가 바닥에 떨어진 지금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동고동락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것을 나눠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잠시 맡아 이 땅을 살다 가는 청지기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작아 따로 목회자를 청빙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오히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드리는 예배이기에 말씀과 삶의 나눔이 진솔할 수밖에 없다. 예배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환경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아낸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보내신 이유에 대해 묵상한다. 상황을 뛰어넘어 감사함은 이방인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생존과 더 나아가 현지인들의 마음을 여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태도인지 모르겠다.
가발 공장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시작되는 복음이 토고의 내일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된다. 이 땅에도 눈물로 기도를 심고 기도하는 이들이 있음이 또한 감사하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6) 가발 공장에서 시작되는 복음 - 토고 아미나회사를 가다
입력 2015-05-23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