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수사] 패 감추고 공격하는 檢… 패 못봐 속타는 홍준표·이완구

입력 2015-05-21 02:40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 8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고검에 들어서고 있다(왼쪽 사진). 엿새 뒤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같은 장소로 출두했다.연합뉴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증거인멸 및 회유 의혹에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 불구속 결정을 내린 배경이다. 두 사람의 혐의 금액이 통상적인 구속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기소 방침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 수사팀은 혐의 내용의 일시·장소·방법을 특정하지 않는 전략으로 법정에서의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수사팀이 들고 있는 패를 모르는 의혹 당사자들은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두 상정해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20일 “(홍 지사와 이 전 총리가 참고인) 회유에 직접 관여했는지 불투명하다”고 불구속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측근들에게 제기된 회유 의혹이 두 사람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측근들은 본인 의사에 따라 한 것이라고 완강히 얘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 사안이 구속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기준 혐의액은 2억원 이상이다. 수사팀은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9억원 상당을 받은 분도 현재 불구속 재판 중”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한명숙 전 총리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잠정적으로 불구속 기소를 결정한 수사팀은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의 수비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 조사와 동선 복원 작업을 통해 돈이 전달된 구체적 정황을 확인했지만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다.

이 전 총리는 2013년 4월 4일 충남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3000만원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다만 핵심 쟁점인 돈 전달방법을 두고 엇갈린 의혹들이 제기됐다. 2011년 6월 1억원을 수수했다는 홍 지사에 대한 의혹에서도 일시와 장소, 방법을 두고 여러 의혹들이 불거졌지만 수사팀은 따로 대응하지 않았다.

수사팀의 이런 전략은 두 당사자와 핵심 관계자 조사 때도 유지됐다. 수사팀은 홍 지사와 이 전 총리를 소환해 ‘성 전 회장과의 관계’나 ‘의혹이 제기된 시기에 성 전 회장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는 “이럴 거면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검찰은 공소장에도 구체적 범행 일시와 방법 등을 특정하지 않고 기소한 뒤, 재판이 시작되면 공소장을 변경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리 알리바이를 준비하기 어려워진 홍 지사와 이 전 총리 측은 검찰의 핵심증거를 흔드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수사의 단초가 된 성 전 회장의 메모와 녹취록의 신빙성이 공격 대상이다. 메모와 녹취록을 작성한 당사자는 이미 숨졌다. 수사팀은 ‘통상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거짓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변호인 측은 ‘보복을 목적으로 거짓을 말했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의 유일한 직접증거인 핵심 관계자 진술도 공방 포인트다. 홍 지사 측은 이미 돈을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배달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전 총리 측 역시 성 전 회장과의 독대를 목격했다는 일부 참고인들의 진술과 반대되는 캠프 관계자들의 증언을 검찰에 제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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