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불평등을 넘어] ‘불평등’ 해결할 수 없다고? 비관론을 하나하나 격파하다

입력 2015-05-22 02:46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의 멘토로도 유명한 앤서니 앳킨슨 교수(영국 런던정경대)의 반세기에 걸친 불평등 연구를 총결산한 '인이퀄리티(Inequality)'는 지난 4월 말 미국에서 첫 선을 보였다. 한국어판은 '불평등을 넘어'란 제목으로 그보다 2주 늦게 출간됐다. 사진은 71세의 앳킨슨 교수가 미국 출간 직후 열린 저자 사인회에 참석한 모습. 글항아리 제공
불평등이 문제라고 한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논의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왜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는가? 문제는 비관론이다. 과연 되겠느냐, 또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겠느냐, 이런 의심들을 돌파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이런 두터운 비관론을 뚫고 나온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여기에 쏟아진 세계적 관심은 불평등 문제에 대한 열망과 비관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은 신작 ‘불평등을 넘어’에서 “불평등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벌써 “뭘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 하면서 주류 경제학의 비관론을 꺼내드는 사람들을 차단하고, 앳킨슨의 얘기에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가 불평등 연구에 반세기를 보낸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대가이며,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사실, 그리고 피케티의 멘토라는 점을 먼저 거론하고 넘어가자.

앳킨슨이 불평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세계가 비교적 평등했던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전에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전후 수십 년간이 그랬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세계는 다시 불평등으로 회귀한다. 2000년대 중남미에서도 불평등이 놀라울 만큼 줄어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지금과 같은 높은 수준의 불평등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견해는 정신을 좀먹는다… 과거에 꼭 전쟁 기간이 아니더라도 불평등과 빈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시기들이 있었다.”

앳킨슨은 ‘전후 몇 십 년의 평등’과 ‘1980년대 이후의 불평등’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그는 이 ‘차이’에 대해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불평등의 원인과 평등의 요인들을 추출해낸다.

앳킨슨의 책은 좋은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질문들을 보면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치밀하게 문제를 파고들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가?

그는 여기에 답하기 위해 15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성인이 되는 모든 젊은이에게 기초자산(최소한의 상속)을 나눠주어 배움의 길을 가든 사업을 시작하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하자고 하고, 기본소득, 생활임금, 참여소득, 공공근로 보장, 소득세와 재산세의 누진화, 사회보험 확대 등을 제안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닌지 모른다. 앳킨슨은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비관론을 깨트려야 한다고 본다. 그는 “적어도 지금 같은 불평등은 사회 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다”에서 출발해 “불평등은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역점을 두는 것은 “대안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걸 입증해 나가는 것이다.

앳킨슨은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세계화와 기술혁신이 초래한 불가피한 결과이며, 일국적 노력으로는 극복이 불가능하고, 경제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희생해야만 한다는 등의 비관적 얘기들을 죽 늘어놓고 하나하나 격파해 나간다. 그의 무기는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의심이고, 근래 노벨경제학상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주목하는 ‘다른 경제학’이다. 다른 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경쟁적 시장을 상정한 ‘모형 속에서 작동하는 경제학’이 아니라 독점과 실업, 협상 등이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복합성을 반영하는 경제학’이다. 또 생산력 중심이 아니라 분배 중심의 경제학이다.

앳킨슨의 ‘불평등 경제학’에 따르면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집힌다. 그는 “공평성과 효율성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충돌이 생길 것이라는 선험적인 견해는 그 바탕에 깔린 가정들을 검토할 경우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를 불러오고 따라서 완전고용을 이루려는 노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틀에 박힌 주장에 대해서 “근로자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임금 수준과 함께 높아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 “불평등을 줄이는 조치들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관계는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면서 “평등을 제고하는 개입은 실제로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 IMF 보고서를 인용한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불평등과 함께 더 큰 파이를 갖는 것보다 더 공정하게 분배된 더 작은 파이를 갖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발언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비관론과 싸우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비관주의에 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열심히 희망을 구축해왔는가? 불평등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해법은 우리 손안에 있다”는 앳킨슨의 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오늘날 더욱 거대해진 부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또 자원을 덜 불평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것을 합의할 수 있다. 분명 미래를 낙관할 근거가 있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