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과 북아일랜드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손을 잡았다. 유럽 주요 언론은 영국 찰스 왕세자와 북아일랜드 신페인당 게리 애덤스 당수의 역사적인 만남에 주목했다.
영국 BBC방송 등은 이틀 일정으로 북아일랜드를 방문한 찰스 왕세자가 19일(현지시간) 코너트주 골웨이에 위치한 아일랜드국립대학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애덤스 당수와 악수하고 10여분간 대화했다고 전했다.
찰스 왕세자가 애덤스 당수와 손을 잡은 것은 미래를 위해 철천지원수와의 아픈 과거를 청산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애덤스 당수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유혈투쟁을 전개해온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을 이끌고 있다. 30여년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촌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을 살해한 IRA의 폭탄 테러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AP통신은 찰스 왕세자와의 면담이 끝난 후 “마운트배튼 경의 죽음에 대해 사죄했느냐”는 질문에 애덤스 당수가 대답을 회피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애덤스 당수는 “1968년 이후 일어났던 과거의 문제들에 대해 우리 모두 유감을 표했다”고 밝혔다. IRA의 사령관 출신 마틴 맥기니스 신페인당 부대표는 “오늘 우리는 서로 그 누구에게도 사죄를 요구하지 않았다”면서도 “찰스 왕세자에게 1970년대 영국군에 의한 시민의 죽음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갈등의 역사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 아일랜드를 침입한 영국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파를 주축으로 한 신교도를 후원하면서 아일랜드 북부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1801년 영국에 합병됐다가 1921년 독립했으나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된다.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이 신교도들로부터 차별을 받으면서 시민운동이 일어났고 영국군이 여기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해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공화군(IRA)이 만들어져 30여년의 무장투쟁이 시작됐다.
1972년 영국군 공수부대가 투쟁에 나선 북아일랜드 시민 10여명을 사살한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양쪽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1979년 IRA의 폭탄 테러로 마운트배튼 경을 비롯한 왕실 친척들이 목숨을 잃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후 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과 교류를 끊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 당시 공수부대의 명예 연대장이었던 찰스 왕세자가 오랫동안 지탄받았다.
그럼에도 영국은 북아일랜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시도를 계속해 왔다. IRA가 휴전을 선언한 이후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총리로선 최초로 애덤스 당수와 면담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012년 북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 환영 행사에서 당시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부수반으로서 각료 자격으로 참석한 맥기니스 부대표와만 악수를 나눴다.
영국 가디언은 찰스 왕세자가 애덤스 당수와 악수한 데 대해 “지극히 가슴 아픈 일”이라고 전했다. 찰스 왕세자는 20일 마운트배튼 경이 숨진 현장을 찾을 계획이다. 이날 도심 곳곳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 희생자들의 가족이 애덤스 당수가 찰스 왕세자를 만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원수’를 끌어안다… 英 왕실, IRA 상징과 역사적 만남
입력 2015-05-21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