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중국인 거리 ‘빛 공해’… ‘밤의 풍경’ 이 두 곳의 차이가 뭘까요

입력 2015-05-21 02:46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 8번 출구 인근의 ‘중국인 거리’가 19일 휘황찬란한 간판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중구 명동의 주한 중국대사관 앞 상점 간판들은 차분하게 정리돼 있었다. 두 곳의 전체 간판 수는 비슷하지만 내뿜는 빛의 양은 천양지차였다. 두 곳 모두 조리개 5.0, 감도 ISO1600, 셔터스피드 60분의 1초의 같은 조건에서 촬영했다. 이병주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 8번 출구 주변은 ‘서울 속 중국’이다. 여기서부터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 부근까지 ‘중국인 거리’로 통한다. 중국동포 등이 밀집해 있어 건물마다 중국어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오가는 사람도 상당부분 중국어를 쓴다.

지난 19일 오후 9시,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이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다. LED(발광다이오드)와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간판들은 요란한 불빛을 뿜어내며 불야성을 이뤘다. 한 3층 건물에는 2m 높이의 대형 간판과 함께 상호만 적힌 동그란 보조간판 23개가 섞여 파랗고, 빨갛고, 하얀 빛을 쏟아냈다. 겨우 5초간 바라봤을 뿐인데 눈이 따끔거렸다.

길이가 450m쯤 되는 이 거리는 온통 휘황찬란한 간판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눈을 찌를 듯 밝은 간판을 쳐다본 뒤 고개를 돌리면 희미한 잔상이 남아 앞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인근 지구대 경찰관은 “대림역 근처는 중국인 소유 건물이 많고 중국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중국인이 좋아하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간판이 즐비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속 중국의 화려함은 ‘빛 공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2013년 서울시와 환경부가 발표한 ‘서울시 빛 공해 환경영향평가 종합보고서’를 보면 빛 공해는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불면증·우울증·고지혈증·두통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빛 공해가 인체 면역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내놨다.

한국인 상인과 주민들은 불편함을 넘어 고통을 호소한다. 이 거리를 관할하는 영등포구는 지난 2월 서울시 조사에서 ‘빛 방사 허용기준’을 초과한 비율이 25개 자치구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58%를 기록했다. 평균(41%)을 크게 웃돌았다. 도심이면서 상가가 밀집한 중구가 61%로 1위다.

대림역 주변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김모(58)씨는 “밖을 내다볼 때마다 눈이 아파 정신이 없다”고 했다. 인근 카페에서 일하는 임모(23·여)씨는 “오후 11시쯤 퇴근하는데 그때도 모든 간판에 불이 번쩍번쩍해 초저녁과 한밤중이 구분이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인 거리에 사는 김모(42)씨는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밤에는 밖에 잘 안 나온다”고 했다.

허가를 받지 않은 간판도 넘쳐난다. 고정광고물 규정을 위반한 간판을 찾아내 5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매기고 있지만 부과까지 두 달 넘게 걸린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해도 새로 생겨나는 간판이 더 많아 전체 무허가 간판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철거가 바로 되지 않아 구청에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불만과 피해가 쌓여가고 있지만 영등포구는 ‘유명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 위주로 간판정비를 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해서다. 올해도 간판정비 대상 구역에서 대림역 부근은 빠졌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시에서 나오는 지원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시민들 체감효과가 큰 곳부터 정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빛 공해를 단속할 법적 근거도 없다. 정부에서 2013년 2월 빛 공해를 규제하고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5년의 유예기간을 두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서울시 도시빛정책추진반 관계자는 “빛 공해 관련 민원이 들어오면 지도 권고는 할 수 있어도 과태료 등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서울시에 접수된 빛 공해 민원은 5410건에 이른다.

같은 날 오후 10시30분, 중구 명동2가 중국대사관 앞은 대림역과 사뭇 달랐다. 이곳도 중국인 밀집지역으로 건물마다 중국어 간판이 빼곡하다. 하지만 전혀 눈이 부시지 않았다. 2013년 중구에서 대대적인 간판 정비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중구 관계자는 “중국대사관 앞은 명동관광특구 안에 위치해 국비 지원을 받아 정비를 마쳤다”며 “예산이 미미해 대표적인 도로와 구역을 선정해 우선 정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명동과 대림역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박세환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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