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 허용을 돌연 뒤집으면서 그 배경에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외교적 결례까지 무릅쓴 북한의 무모한 결정 번복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통치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국제사회 전체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아직까지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 방한을 통해 확인된 한·미의 강경한 대북 공조 스탠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기정사실화 등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거기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에서 드러난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야기한 내부정세 불안으로 말 못할 사정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낳는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도, 북한 서열 2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반 총장을 맞을 수 없을 정도로 이른바 양봉음위(陽奉陰違·보는 앞에선 순종하면서 속으로 딴 마음을 품는다는 뜻) 세력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 총장은 20일 서울디지털포럼 개회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자리에서 “오늘 새벽 북측이 갑작스럽게 외교 경로를 통해 개성공단 방북 허가결정을 철회한다고 알려왔다”며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직접 밝혔다. 불쾌함이 역력한 얼굴로 “나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남북대화의 메신저’ 역할을 자임했던 반 총장조차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은 남한과 대화할 의지가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제1비서와 그를 옹호하는 강경파가 대남·대미 대결국면을 조성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전날 반 총장이 여러 차례 북한 인권과 핵·미사일 개발을 비판하는 언급을 한 데 대한 반발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서보혁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결정 번복은 북한이 반 총장을 유엔 안보리 제재와 인권 제재 등을 총괄하는 ‘대북 제재의 집행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연구원 소속 장용석 선임 연구원은 “대결적 분위기를 가져가는 게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대한 대응에 낫고 내부결속에도 도움이 된다고 봤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듯 북한은 핵무기의 ‘소형화’ ‘다종화’에 성공했다는 성명을 최고 통치기구인 국방위원회발(發)로 발표했다.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은 “중단거리 로켓은 물론 장거리 로켓의 정밀화 지능화에도 최상의 명중률을 담보할 수 있는 단계다.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위력 강화 조치에 함부로 도전하지 말라”고 위협했다.
김 제1비서가 이번 일을 통해 내부정세 불안을 감추려 한 게 아니냐는 말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나이 어린 김 제1비서의 일천한 경험과 외교적 미숙함이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참석 돌연 취소에 이어 이번 결정 번복까지 야기했다는 추정도 내놓고 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뉴스분석] 반기문 유엔총장 방북 돌연 거부 왜… 北 내부 돌발 변수? ‘사드’ 반발?
입력 2015-05-21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