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서울이 싫다” 고향 전출 줄서는 경찰관들… 상반기만 316명 ‘엑소더스’

입력 2015-05-21 02:37
“다들 고향 가고 싶어 하죠. 서울 떠나서 지방근무 하려는 경찰이 많아진 지 꽤 됐어요.”

지난 17일 만난 서울의 한 지구대 A경사는 올 초 고향인 전북으로 전출 신청을 했다. 자녀 교육을 생각하면 서울이 나을지 모르나 높은 집값과 물가가 부담이었다. 근무지가 서울이든 지방이든 월급과 수당은 같으니 굳이 다세대주택을 전전하며 교육비에 허덕이기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3일 발표된 지방경찰청 간 인사 교류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다. 그는 “안 될 줄 알았다. 보통 4∼5년 기다려야 한다더라”고 했다.

경찰의 ‘서울 엑소더스(탈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치안 수요가 많은 서울은 업무 강도가 세다. 자연히 승진시험 준비할 시간은 부족하다. 보수는 서울이나 지방이나 같은데, 높은 물가에 ‘서울살이’는 고달프다. 경찰채용시험에선 지방 수험생도 모집인원이 많은 서울에 지원하곤 하지만, 일단 합격하면 이런 이유로 지방 전출을 꿈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최근 3년간 전입·전출자 통계’를 보면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긴 경찰은 2013년 304명에서 지난해 437명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서울로 유입된 경찰은 205명에서 167명으로 감소했다. 올 상반기 인사 교류에서도 벌써 316명이 지방으로 빠져나갔다. 전입자는 87명에 불과해 감소 인원만 229명이다. 전출 대기자는 2000명이 넘는다.

지방 전출은 신청 순서대로 기회가 주어진다. 부모의 투병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차례가 앞당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너무 많아서 ‘특별한 사정’에 ‘점수’를 매겨 순서를 조정한다. 예를 들어 가족이 비교적 치료하기 쉬운 갑상선암 투병 중일 경우엔 점수가 낮고, 말기 암일 경우에는 높은 식이다. 같은 위암도 1∼3기를 나눠 배점할 정도다.

이들이 지방에 가려는 공식적인 사유는 대개 ‘부모 봉양’ 또는 ‘주말부부 해소’라고 한다. 하지만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서울과 지방의 근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르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나 강남구 역삼지구대의 경우 하루에 112 신고만 200건 안팎이 떨어지지만, 지방에는 도시 전체의 112 신고가 수십 건에 불과한 곳도 많다.

지방 근무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서울의 한 지구대 팀장은 “예전에는 지방 가는 게 좌천으로 여겨지곤 했지만 요새는 그렇지도 않다”며 “승진시험도 지역마다 따로 실시하기 때문에 서울이 특별히 승진에 유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서울의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등장했다. 지구대의 경우 1명만 빠져도 빈자리가 크다. 이번 인사로 2명이 전출된 모 지구대 팀장은 “빠진 인원이 언제 충원될지 알 수 없다. 벌써 교대근무 등에 과부하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서울의 경찰 수는 2만명이 넘어 비율로 따지면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황인호 최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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