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이 다시 한번 체제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행(行)을 돌연 번복한 것 자체가 북한 내부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을 계기로 시작된 기득권층 반(反)김정은 세력에 대한 숙청작업이 현재진행형이며, 이로 인한 정세 불안이 가중되는 바람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이런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정보당국은 현 부장 숙청 당시 씌워진 ‘죄목’ 중 하나인 ‘양봉음위’에 주목하고 있다. 이 죄목이 2013년 12월 숙청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김 제1비서에게는 국정을 믿고 맡길 ‘자기 사람’이 많지 않다. 따라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권력집단과 시스템에 의존해 정권을 운영할 수 없으며 기존 권력층을 ‘완전하게’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정치에 의존하게 됐고, 거꾸로 이런 김 제1비서의 통치방식이 기득권층으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확인된 건 아니지만 “김 제1비서가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당초 참석을 기정사실화했다 돌연 불참했던 이유도 양봉음위 세력의 존재 때문”이란 말이 나온다. 그만큼 반김정은 세력에는 실제 쿠데타를 일으킬 만한 힘과 지위, 능력을 가진 기득권층이 깊숙이 가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다.
김 제1비서는 아버지의 와병으로 2009년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후계자로 내정됐고 2011년 김 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사실상 정치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다. 거기다 33세라는 어린 나이에 50∼70대 최고위급 인사들을 다스려야 하는 상황이다. 유년시절을 스위스 외국인학교에서 보냈고, 김일성종합대학 외에는 북한 내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혁명세대의 자녀들과 자연스레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사회생활도 없었다. 따라서 정치적 동지나 세력 없이 오로지 부친 시절의 권력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 기반이 허약하다 보니 김 제1비서는 충격요법을 남발하며 간부 전체에 대한 집중 감시를 실시한다는 게 정보당국 분석이다.
때문에 집권 4년차를 맞는 김 제1비서의 최고 통치수단은 아버지가 내세웠던 ‘선군정치’도, ‘고난의 행군’도 아닌 숙청과 처형을 통한 공포정치다.
김 제1비서가 현 부장 외에 5명의 권력층 인사를 더 숙청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한 대북소식통은 20일 “당 간부 강연회에서 ‘양봉음위’ 사건으로 현영철 외에 5명이 더 숙청됐다는 말이 나왔다”면서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현영철과 관련된 인물일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철저하게 감시당하며 ‘자칫 숙청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기득권층 안에서는 “수십년 동안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일등공신인데, 우리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증폭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여기에는 김 제1비서의 개인적 성격도 한몫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최고지도자로서의 자존심이 굉장히 큰 데다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에 대해서 용납을 못하는 심리상태인 그에게 ‘과연 북한을 맡겨도 되느냐’는 의문도 커진다는 것이다.
반 총장의 개성공단행을 받아들였다 ‘불허’로 뒤집은 것 역시 김 제1비서 스스로 자신의 외교적 미숙함을 노출한 행위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합의를 해놓고 철회한 것은 변덕을 부린 것인데, 젊은 김정은의 경험과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사실, 그리고 미숙한 측면이 다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北, 반기문 방북 거부] 변덕·공포… ‘김정은 북한’ 심각한 사정 있나
입력 2015-05-21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