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출범 이후 33년 동안 개인적으로 특정팀을 정해 응원해본 기억이 없다. 누가 물어보면 지는 팀을 응원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요즘 주말에 ‘시간 죽이기용’으로 스포츠채널을 여기저기 돌려보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팀이 생겼다. 한화 이글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물에 물탄 듯 플레이하던 한화가 달라도 많이 달라졌다. 큰 점수차로 뒤져도 어김없이 상대편을 추격해 연장까지 끌고 가며 역전승을 일궈내곤 한다. 게임 시간이 길어지면 지루한 종목으로 야구만한 게 있으랴만 한화의 연장 경기는 짜릿함까지 자아낸다. 팬이 아닌 아웃사이더도 이렇게 재미있어 하는데 한화의 연고지 대전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신이 날까.
한화의 변신 이끄는 김성근리더십
한화의 선전은 감독 1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이 약팀을 강팀으로 만든 원동력은 뭘까. 야구 명언을 많이 남기기로 유명한 그의 이 한마디가 한화의 변신을 설명하는 듯하다. 김성근은 말한다. “리더는 선수의 경험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선수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밀어주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 재능이나 지식이 없어도 내가 가진 것을 잘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
김 감독은 한화 선수들의 잠재력이 강팀인 삼성이나 SK에 뒤질게 없다고 본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이 있다”고 한 이순신 장군의 일갈과 오버랩된다.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척도일 것이다.
실세보다 실력 있는 장관들 원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한국 경제’는 어떤가. 10개월 전 취임할 때만 해도 그는 경제주체들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최 부총리는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성장률 6% 달성을 자신 있게 외쳤다. 그러나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작년의 한화 이글스팀을 보는 듯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1분기 실질성장률은 0.8%로 4분기 연속 0%대 성장에 그쳐 있다. 그런데도 경제팀은 당초 전망치인 0.5∼0.6%를 상회하고 있다며 미약하나마 회복세에 있다고 자위한다. 최 부총리는 이달 초 한·중·일 재무장관회의와 아세안+3 회의 참석차 아제르바이잔 바쿠를 방문한 자리에서 보수적으로 봐도 작년(3.3%)만큼은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분기 성장률을 ‘느낌상으로는’ 1%가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1%만 넘으면 선방한 것으로 본다는 뉘앙스다. 기재부 출입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7월 대규모 개각설이 흘러나오는 데다 내년 4월 총선도 얼마 남지 않아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최 부총리가 2분기 성장률 1%를 넘기는 데 의의를 두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분위기라는 것이다. 정말 개각이 이뤄진다면 2분기 성적이 경제팀 실적을 논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어차피 국회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렇게 된다면 최 부총리가 떠난 자리엔 경제체질 개선은커녕 초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자산시장 거품만 남을 것이다. 버블이 터져버린 경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치권에서 온 다른 경제부처 실세 장관들도 결국 선거 경력난에 집어넣을 ‘장관 스펙’만 하나씩 쌓고 돌아가는 게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최 부총리를 보좌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조차 내년 총선이나 하반기 개각 생각에 들떠 벌써부터 출마 희망 지역구 이름이나 정부부처 자리 얘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바라는 것은 돈을 더 퍼붓는 추경도 아니고 추가 금리 인하도 아니다. 한화 선수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듯 일할 의욕이 필요하다. 그리고 경력 관리를 노리는 실세보다 실력 있는 장관들을 원한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시각-이동훈] 경제팀에도 ‘野神’이 필요하다
입력 2015-05-21 00:30 수정 2015-05-21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