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그 前 주한 美대사 “北 ‘악마화’하지 말고 대화해야”…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 출간 간담회

입력 2015-05-20 02:36
도널드 그레그 전 주미대사가 19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에서 책과 북한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굉장히 민감하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 민감함과 두려움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속적인 대화이며, 대화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한국입니다.”

도널드 그레그(88) 전 주한 미국대사가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창비)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에서 기자들을 만난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을 계속 증오하면서 한국이 얻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냉각된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할 것이고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51년 미 중앙정보국(CIA)에 들어가 31년을 재직했으며, 1973년부터 2년간 한국지국장을 지냈다. 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관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10년을 보냈고, 1989∼93년 주한 대사를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여섯 차례 평양을 방문한 그는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이어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똑똑한 지도자이고, 석탄 수출로 외화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을 ‘악마화’하기보다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그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재차 의문을 표시했다. “당시 한 기고문에 ‘한국 정부가 답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 왜 가라앉았는지, 책임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썼는데 그 입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출간된 회고록은 그레그 전 대사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해 CIA 시절, 백악관 시절, 외교관 시절, 공직 은퇴 후 민간인 시절 등을 포괄한다. ‘김대중 납치사건’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주한 미국대사로 서울에’ ‘여섯 번의 평양 여행’ 등 한국 관련 이야기가 많지만 구소련, 베트남전쟁, 이란-콘트라 스캔들 등도 비중 있게 취급한다. 책 속에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도 나온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나쁜 소식 전담 장관’을 두었어야 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인들이 노태우정부 업적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